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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12. 2020

러시아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과 코끼리의 고향 러시아

영국 코로나

러시아 스타일의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에 대한 이해




강남스타일 가사를 보면, 이게 꼭 강남스타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남은 세련되었는데, 강남스타일에 나오는 여자와 남자는 투박하다. 강남스타일을 러시아 스타일이라고 바꿔도 대부분 맞다. 두 가지만 다르다.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라는 부분에 차이가 있다. 러시아 여성은 가리지 않는다. ‘근육보다 사상이 올통볼통한 사나이’라는 부분도 러시아 스타일과 차이가 있다. 얼마 전에 큰 아들이 해준 이야기인데, 시티 오브 런던에서 러시아 남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쉬운 기준이 있단다. 러시아 사나이는 사진을 찍을 때, 팔뚝을 내밀면서 주먹을 불끈 쥔다고 한다. 러시아는 사상보다 근육이 올통볼통하다.


97년 처음으로 소련 땅을 밟았을 때 소련에도 좋은 제품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좋게 말하면 효율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디테일이 없는 것이 많았다. 처음 놀란 것 중에 하나가 마늘을 으깨는 도구였다. 마늘이 참 잘 으깨졌다. 때론 손이 끼거나 손까지 같이 으깨는 경우가 생긴다는 게 소소한 단점이었다. 손이야 뭐 으깨질 수도 있지. 중고 피아노를 샀었다. 벨라루스라는 브랜드였는데 저녁에도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하는데 가운데 페달이 없었다. 누르면 스펀지 같은 것이 내려와 소리 울림을 막아 주는 장치가 없었다. 소리는 생각보다 좋았다. 소련제 자동차 중에 지굴리라는 브랜드가 있다. 당시 후면창에 열선이 없었다. 지프 차종으로 라다가 있었는데, 라다는 최근까지도 깜빡이가 한 가지 종류였다. 보통의 차가 깜빡이를 가볍게 넣으면 몇 번 깜박거리다 꺼지고 깊게 넣으면 계속 깜박거리는데 라다는 그런 구분이 없었다.


이러한 스타일이 어디에서 연유했는가 생각해 보면, 후진국이었던 소련이 선진국이었던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의 목적에만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마늘을 까는 하나의 목적, 망치가 현을 때리는 피아노의 목적,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자동차의 목적, 방향만 표시해 주면 되는 깜빡이의 목적에만 충실할 수 밖에 없었다.


97년에 소련 스타일을 보면서,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이 생각났다. 월러스타인은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 체제라고 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는 독자적 체제가 아닌 자본주의 대항 체제, 부속 체제라고 보았다. 대학시절 그의 책을 읽을 때는 공감하지 못했는데, 97년에 소련에서 소련의 흔적을 보니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련의 체제는 미국을 이기기 위해서 자원을 배분하고 관리하는 체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에 충실할 수 밖에 없었다. 피아노 울림 방지막을 만들 재료가 있으면, 그 재료로 피아노를 하나 더 만드걸 선택했다. 


소련의 그러한 시스템은 어느 정도까지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소련은 우주 탐사 경쟁에서 미국을 번번이 이겼다. 최초의 우주선 스푸트닉호를 발사했고, 최초로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보냈고, 최초로 달에 착륙했으며, 최초로 우주 정거장을 만들었다. 미국이 소련에 앞선 것은 아폴로 11호가 거의 유일했다. 최초로 우주 왕복선을 만들기는 했지만, 미국도 후에 포기한 모델이기 때문에 우주 왕복선 앞에 최초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주관련 조형물이다. 러시아인 자존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우주 탐사다. 아무리 소련을 비하하려고 해도 우주 탐사의 성과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밖에도 소련이 가지고 있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은 참으로 많다.


러시아가 최초로 코비드-19의 백신을 개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최초의 비밀이 상당부분 풀렸다. 마침 백신의 이름이 스푸트닉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정을 건너뛰는 것이 바로 최초의 비법이었다. 지금이야 모든 정보가 투명하니 최초라는 것도 정밀히 입증되어야 하지만,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던 50년 전에 최초라면 최초지, 더 따지고 들게 뭐가 있었으며, 따지는 것은 얼마나 가능했겠는가? 최초의 이면에는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많은 최초를 만들었지만, 그 많은 최초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많은 최초 때문에 결국 소련은 망하고 말았다.

 


러시아는 코끼리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로지나 슬로노프(родина слонов)라는 말이다. 뭐든 러시아가 원조고 뭐든 러시아가 최초라는 주장을 풍자할 때 쓰는 말이다. 글짓기 대회에서 코끼리에 대한 주제가 주어졌는데, 어느 러시아 초등생이 ‘러시아가 코끼리의 고향이다.’라고 주장해 버렸다. 훗날 시베리아 어딘가에서 코끼리와 메머드 중간쯤 되는 화석이 발견되어, 우스개 소리로만 존재하던 주장에 근거가 생겨 버렸다. 즉 최초라고 주장해 놓고 보면, 주장의 근거는 어떻게는 나오게 된다.


푸틴은 초등학생이 되어 러시아가 코끼리의 고향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시베리아에서 화석이 하나 발견되듯이, 임상을 건너뛴 백신이 코로나를 물리쳐 준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백신을 안심하고 맞기 전에 다른 백신이 나오게 될 듯하다. 그래도 백신은 러시아가 최초다. 왜냐면 러시아는 코끼리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술에 안 취하는 약, 멀미약, 감기약 등에 소련제가 아주 잘 듣는 것이 많다. 스탈린이 쇼스타코비치에게 전화해서 ‘미국에 가서 소련을 선전하라!’고 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미국에 가고 싶지 않았다. ‘멀미를 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스탈린은 ‘소련이 죽이는 멀미약을 개발했는데 모르냐?’고 말했다. 쇼스타코비치가 그 멀미약을 복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로도 건강하게 산 것을 보면, 아마 먹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소련 스타일의 제품을 사용하다 보면 처음에는 효율성에 놀라고 두번째는 섬세하지 못함에 짜증이 난다. 그리고 섬세하지 못함은 우리 몸에 데미지를 주는 걸로 귀결될 때가 많다. 조만간 푸틴 대통령이 언론에 나와 주먹을 불끈 쥐고 러시아 백신 광고 모델로 나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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