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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10. 2020

젠틀맨의 말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어!’

런던 라이프

젠틀맨의 말,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어’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배웠다면서 여느 때처럼 재잘재잘 떠든다. ‘그래? 그래!’라며 추임새와 함께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그니까 ‘I am just going outside and may be some time(나 밖에 나갔다 올게. 근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라고 말하고 돌아오지 않았데.”라고 말을 맺었다. 그제야 정신이 바짝 들어서 “뭐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해봐!”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는 스콧(Scots)의 나라다. 스콧이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넘어올 때 당시 칼레도니아에는 온몸에 문신으로 무장한 픽츠(Picts) 족이 있었다. 픽츠와 스콧이 합쳐져 지금의 스코틀랜드가 되었다. 스콧(Scott)이라는 성(패밀리 네임)을 가진 사람도 많다. 스코틀랜드 여러 클랜(clan) 중에 스코(Scott)이 있었다. 전투에 능했던 Scots 중에서도 유독 말을 잘 타고, 싸움에 탁월했던 클랜이 Scott이었다. 호주의 골프 선수 아담 스콧(Adam Scott), 영국의 탐험가 로버트 팔콘 스콧(Robert Falcon Scott)이 모두 이 집안 출신이다. 스콧 성에 독수리를 뜻하는 이름인 팔콘이 들어가 있었던 로버트 팔콘 스콧은 천상 탐험가였다.

먼저 가서 깃발을 꽂는 사람이 임자였던 영국식 제국주의 시대에 탐험가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지금도 ‘위대한 100인의 영국인’ 설문조사에는 과학자 못지않게 탐험가들이 많다.

어제자 타임스에는 7살의 영국 여자 아이 애쉴린 맨드릭(Ashleen Mandrick)이 12살 오빠, 그리고 46세 엄마와 함께 완전 장비를 차고 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Monte Rosa에 등정했다. 탐험가 피가 끓어오르나 보다. 스코틀랜드에 하이랜드(Highland)가 있으니 높은 산 등정이 영국인에게 쉬운 일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는 말은 하이랜드지만 높지 않은 구릉의 연속이다. 영국에서 제일 높은 곳은 1 345미터에 불과하다.

 


노르웨이의 아문젠과 영국의 로버트 팔콘 스콧이 최초로 남극에 가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스콧의 탐험대는 남극으로 가는 중에 폭풍우를 만났고, 배가 항해 중에 얼음에 갇혀 시간을 지체했다. 출발도 늦었지만, 아문젠 팀은 개를 사용했고, 스콧 팀은 말을 주로 사용한 점이 성패를 갈랐다. 스콧 팀의 말 관리자였던 로렌스 오츠(Lawrence Oates)는 기병대장 출신으로 말에 대해 해박했다. 그는 개를 사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개를 끌고 가다가 짐이 줄면 필요없는 개를 순차적으로 잡아 먹어 부족한 식량을 대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콧은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아문젠 팀이 스콧 팀보다 한 달이나 먼저 남극에 도착했고, 늦어진 스콧 팀은 영하 40도의 추위를 만났다. 다섯 명의 대원 중에 한 명이 돌아오는 길에 산에서 낙상하여 죽었다. 남극에는 스코틀랜드보다 더 높은 산이 있다. 말은 추위와 산악 지형을 이기지 못하고 낙오했다. 동상에 걸리고 낙상하여 걷기 힘들자, 오츠는 자신을 버려두고 갈 것을 부탁했지만, 대원들은 오츠를 끝까지 데리고 갔다. 마침내 식량마저 부족해졌고 잡아먹을 개나 말도 없었다. 하루는 오츠가 텐트 밖으로 나가면서 대원들에게 ‘I am just going outside and may be sometime’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머지 대원들은 영하 40도의 날씨 속에서 12일간 더 사투를 벌이다가 중간 기착지를 불과 18km 남기고 모두 사망했다. 그들의 시신은 8개월 후에 발견되었고, 그들의 짐 속에는 남극점에서 채취한 지질학 샘플과 스콧 대장의 일기가 있었다. 일기에 오츠가 사라지면서 남긴 말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오츠의 시신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오츠의 may be some time은 죽음 앞에서도 용감했던 영국식 젠틀맨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젠틀맨이란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친절하기만한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아문젠의 최초 남극 정복과 함께 스콧 팀이 보여준 숭고한 희생정신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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