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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12. 2020

해변의 개, 광고판의 개, 월드컵의 개

런던 라이프

해변의 개, 광고의 개, 월드컵의 개
  
  
세인트 앤드루스, 카누스티, 난, 도노크의 링크스 골프장에서 인상적인 것은 골프장과 함께 있는 해변이다. 도노크의 해변은 특히 절경이고, 난의 해변은 끝없이 이어진다.

난(Nairn) 골프 코스에서 잘 친 공 하나가 바람을 타고 바닷가 모래 사장에 떨어졌다. 해변은 OB가 아닌, 워터 해저드로 플레이할 수 있다. 모래사장에서 7번 아이언 샷을 하는데, 바닷가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하던 중년의 부부를 만났다. 꽤나 멋진 샷을 날렸다. 아저씨는 굿샷이라고 말해주었고, 개는 상황을 이해하는 듯이 나와 주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골퍼를 따라다니는 개를 골프 코스에서 볼 수 있는데,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다가도 그린에서는 조용히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스코틀랜드 개는 골프를 꽤나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바닷물로 던져지는 나무 조각을 주어 오느라 여념이 없는 해변의 개는 테니스 공을 주어 오느라 분주한 런던의 개보다 행복해 보였다. 행복하기로 따지면, 개가 행복할까? 개 주인이 더 행복할까? 개는 주인을 향해 무엇인들 안 물어올까 싶었다. 행운도 물고 올 것 같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유난히 똑똑한 개가 있었는데, 뭉치돈을 물고 온 적도 있다.

히드로에서 가방을 기다리는데, 버버리 광고판이 보였다. 언제나 감탄하는 것은 히드로 광고판이 간결성과 예술성이다. 수준이 안 되는 광고판은 못 부치게 하는 것인지? 큰 개를 안고 있는 모델을 보면서 버버리 가방을 사고 싶은 생각보다 큰 개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개가 아니고 사자인 것 같기도 하지만, 버버리 광고판을 보면서 기왕이면 큰 개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도, 비행기도, 길가도 번잡하다. 소셜 디스턴싱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공항에서 집에 오는 길은 많이 막혔다. 우버 기사가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 길을 우회하는데, 나무 사이로 파란색 표지판이 보였다. 역사적인 인물이 살았던 곳을 알려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 있는 게 신기했다. 영국식 정이품송인가?

나무에 매달린 파란 표지판에는 월드컵이 발견된 장소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오늘은 영국의 축구리그인 EPL이 시작되는 날이다.

1966년에 영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 있는 감리교 센터 건물에서 줄리메(Jules Rimet) 컵이 전시되어 있었다. 줄리메 컵이 전시 중에 도난당해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일주일 후에 줄리메 컵은 희한하게도 런던 남부의 노르우드(Norwood)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피클(Pickles)이라는 개였다. 주인과 산책하다가 나무 덤블 밑에 신문지로 싸여 있던 줄리메 컵을 발견했다.

 


피클은 메달, 평생 무료 음식권과 오만 파운드의 상금을 받았다. 영화와 티브이에도 수차례 출연했다. 덕분에 피클의 주인은 집을 새로 샀다.

1970년에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세 번째로 우승하자, 줄리메 컵은 영원히 브라질 소유가 되었다. 1983년에 줄리메 컵은 브라질에서 다시 도난당했고,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1966년 줄리메 컵을 도난당해 십년감수한 영국은 비밀리에 똑같은 복제품을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그 컵은 맨체스터에 있는 축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혹자는 영국이 원본을 남겨두고, 복사본을 브라질에 주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렇게 되면 맨체스터에 있는 것이 복사본이 아닌 진본이 된다. 설마 영국이 그렇게까지 사기를 치고, 물건을 훔쳤겠는가?

‘독일은 아프리카 일부를 훔치고, 프랑스는 캐나다 일부를 훔쳤지만, 영국은 모든 것을 훔쳤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지만, 월드컵을 그런 방식으로 훔쳤을 것 같지는 않다.

1966년에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했고, 영국이 우승하여 줄리메 컵을 들어 올렸다. 피클은 영국을 우승으로 이끈 축구선수 바비 무어(Bobby Moore) 보다 더 유명한 셀럽(celebrity)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는 행복이고 행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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