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Mar 04. 2022
오늘 저녁에는 남편이 집에 없었다. 혼자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나는 퇴근하면서부터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너구리 라면을 먹으려는 것이다. 남편에게는 밥을 먹을 거라고 말했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혼자 밥해 먹기도 그렇고, 마침 날씨도 쌀쌀한데 따끈한 국물에 부드럽고 졸깃한 오동통한 면발이 딱 좋지 아니한가?
집에 들어오면서 티브이 먼저 켰다. 남편과 나는 채널 취향이 상당히 다른데 오늘은 내 맘대로 해도 된다. 마침 택배를 받은 것이 있어 옷도 갈아입지 않고 물건부터 뜯어보았다. 나는 남편에게 구속받는다고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막상 집에 혼자 있으니 이런 사소한 일에서도 일말의 자유가 느껴졌다.
한참 꾸무럭거리고 나서 부엌으로 갔다. 물을 끓이고 면을 넣었다. 분말스프와 건더기 후레이크도 넣었다. 그런데 다시마가 없다. 혹시 떨어뜨렸나 찾아보았는데 없었다. 이미 휴지통에 넣었던 면 봉지를 꺼내서 뒤집어 보았는데 거기도 없었다. “혹시 요새는 다시마가 안 들어가는 건가?” 그래서 겉봉의 설명을 읽어보니 분명히 물을 끓인 뒤 면과 스프와 다시마를 넣으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있어야 할 것이 빠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 회사 요새 잘 안 돌아가나? 이러면 고객 신뢰가 떨어질 텐데?"
전에 인터넷에서 재미난 우스개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가 간밤에 돼지꿈을 꾸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나 되었다.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복권을 샀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당첨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라면이나 먹으면서 아쉬움을 달래려고 너구리 봉지를 뜯었는데 다시마가 두 개 들어있었다.’
너구리에 다시마가 이렇게 중요한 건데 그게 빠졌다니 얼마나 서운할 일인가? 나는 돼지꿈을 못 꾸었으니 더블은 바라지도 않고 다만 원래대로 한 쪽은 있어야 될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다시마를 넣으면 되지.’ 평소에 국물 낼 때 쓰는 다시마가 있어서 얼른 찾았다. 면을 이미 넣었기 때문에 다시마를 얼른 넣어야 한다. 남들은 어쩌는지 몰라도 나는 면을 먹고 나서 맨 마지막에 다시마를 건져 먹는다. 다시마가 없으면 과정 하나가 빠지게 될 것이다.
다시마는 한 쪽만 넣으려다가 한 쪽을 더 넣었다. 쌍돼지꿈은 못 꾸었어도 내가 스스로 상을 받으면 될 일이 아닌가. 거기다 달걀도 한 개 넣었다. 다시마 더블에 달걀 추가, 이만하면 흡족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면을 반쯤 먹고 나서 보니 어찌 된 일인지 국물에 다시마가 세 쪽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지?”
아마도 다시마가 면 밑에 깔려 있었는데 내가 못 보았고, 어디 흘린 줄 알고 냄비 바깥에서만 찾았나 보다.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성급했다.
“아이구 미안합니다. 댁의 회사 일 잘하고 있냐고 불평한 것 취소합니다~!!”
겉봉지에서 회사 이름 확인한 것을 나 혼자 사과했다. 불평도 나 혼자 한 것이니 사과도 그 정도면 적당할 것이다.
그래도 그 바람에 다시마가 트리플이 되었다. 먹고 보니 한 쪽보다는 두 쪽이 나았다. 두 쪽 보다 세 쪽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내 취향에는 한 쪽이면 아쉬움은 면하고, 두 쪽이면 충분하고, 세 쪽부터는 필요치 않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트리플이 낫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게 저녁을 먹었느냐고 한다. 먹고 있다고 했더니 뭐 먹는지 물었다. 라면 먹는다고 하니 웃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뜻이다. 그럴 줄 알면서 뭘 묻는지? 나는 혼자서 내 맘대로 해서 좋기만하구만...!
그래도 다시마 이야기는 안 가르쳐 주었다. 아무리 내외지간이라고 해도 모든 걸 다 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