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을 깁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 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고 다니다 보면 으레 신발이 터지거나 찢어지게 마련이었는데, 신기료장수는 이런 갖신을 기워주고 품삯을 받았으나 대개는 갖바치들이 이것을 겸업하였다.
어렸을 적에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적 이야기에서 보았던 ‘신기료’라는 말이 아직도 현실에서도 쓰이는 말인 줄은 몰랐었다. 내가 다시 온양(아산)으로 이사 와서 그 ‘신기료’라고 쓰여진 간판을 보기 전까지는. 사실 우리 어렸을 적에도 신기료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고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을 때 처음 알게 된 말이었다.
나는 그 신기료 가게를 몇 번인가 갔었다. 한 번은 가방의 끈을 수선하기 위해서였고 나머지는 구두 굽을 갈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겨울에 신었던 앵글 부츠 굽이 닳아서 더 망가지기 전에 그 신기료 가게를 찾아갔다. 그 가게는 붙박이 건물이 아니고 시장 출입구 쪽의 한 귀퉁이에 놓인 콘테이너였다. 그런데 가서 보니 없어졌고 그 주변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 잡다한 건물들을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시장 부근 어디에 아파트가 생긴다는 광고는 보았었지만 그게 그 자리인 줄은 몰랐었다. 나는 쇼핑백에 싸가지고 갔던 신발 두 켤레를 덜렁덜렁 들고서 장을 본 다음 신발을 차 트렁크에 넣은 채 그냥 들어왔다.
어제는 퇴근하려고 차에 앉았는데 햇빛이 아직 있었다. 집에 가기 전에 볼일 하나 쯤은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신발 고치는 숙제를 할까 싶어서 네비에 ‘구두수선’이라고 쳐 보았다. 어느 곳이 뜨기에 나는 반가워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안내를 따라가다보니 방향이 그 신기료 가게 쪽이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곳과 달리 시장 안쪽으로 가라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위치의 다른 가게인가 보았다. 아니면 그 신기료 가게의 옮긴 위치이거나.
시장 안쪽으로 차가 지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양쪽으로 좌판이 늘어서 있고 차가 지나갈 때 사람들은 걸음 속도를 늦추거나 옆으로 비켜주거나 했다. 나도 가끔 장에 나가보았을 때 도대체 누가 이런데 까지 차를 타고 지나나 했더니 내가 그렇게 되었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도 민망했고 맨 마지막 구간에서는 마주 들어오는 차량이 있어서 비키기에 진땀을 뺐다. 그나마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주차를 막으려고 세워놓은 표지들을 옆으로 치워서 공간을 넓혀주어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런데 허망한 것은 돌고 돌아서 가보니 지난번 갔다가 허탕 쳤던 그 장소였다. 혹시 지난번에 내가 못 찾았던 건가 하고 근방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이왕 그 장소를 안내할 거면 길이나 좋은 데로 데려갈 것이지, 바로 옆 큰 도로를 두고 차로 시장 안을 누비게 만들다니, 이럴 때 보면 네비가 똑똑하다가도 헛똑똑이가 아닌가 싶다.
연거푸 두 번이나 헛걸음을 하고 보니 조만간 신발을 꼭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그래서 네이버에 ‘구두수선’을 쳤더니 ‘구두수선박사’라는 가게가 떴다. 거리뷰를 보니 가게도 번듯하고 차를 타고 가게 앞까지 가는데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달라진 것은 신을 고치는 사람이 ‘신기료장수’가 아니라 ‘구두수선박사’라는 점이다. 구두수선은 어디든 잘 해주겠지만 나는 ‘신기료’라는 간판을 다시 못 볼 것이 아쉬웠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던 어린 시절을 다시 한번 잃어버리는 듯한 상실감이 든다. 이젠 신기료 장수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