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화원에 나가서 꽃 화분을 몇 개 사 왔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내가 고른 것은 서양 앵초와 수국, 카랑코에였다. 분홍 꽃들만 골랐는데 그중에 수국이 제일 예뻤다. 내가 아는 수국은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둥근 꽃다발 모양이었는데 이것은 내가 모르던 종류로 연연한 색깔도 예쁘고, 산수국처럼 성글게 피는 모양이 아주 예뻤다.
집에 와서 앵초와 카랑코에는 내 화분에 옮겨 심었고, 수국은 마땅한 화분도 없거니와 날씨가 더 풀리면 밖에 내다 심을 요량으로 그냥 두었다. 거실 창가 탁자에 올려놓고 보니 화사한 봄 느낌이 났다. 밖에는 날이 잔뜩 흐렸고 바람이 부는지 실측백 나뭇가지가 바람에 술렁였다.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이른 봄 날씨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내 꽃들은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 있었다.
4월까지는 안에 둘 생각이다. 꽃집 아저씨 말로는 충남지방은 4월에도 서리가 내릴 수 있다고 했다. 낮 기온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원래 꽃들이 피는 시기는 이보다 한참 뒤인데 화원의 꽃들은 온실에서 계절을 앞당겨 키워낸 것들이다. 덕분에 나는 봄꽃들을 적어도 한 달은 먼저 만났다. 어차피 좀 더 기다리면 자연히 꽃이 필 것인데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사기 전에는 몰랐는데 내게는 봄꽃이 지금 필요한 거였다. 금방 올 듯한 따뜻한 날들은 선뜻 오지 않았고 메마른 추위의 날들은 지루하고 길었기 때문이다.
수국에 마음을 두고 나니 삶의 무료함이 어디론지 날아갔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를 좋아할 때 혼자서 느끼는 것 같은 잔잔한 기쁨이 마음 한 구석에 일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종류의 기쁨이 필요하다. 손자 호수는 그것이 이제 막 젖 떨어진 강아지 까미에게 있고, 요즘 내게는 새로 사 온 수국 꽃에 있는 것이다.
수국이 창가에서 며칠 있는 동안 꽃이 더 피어났다. 돈을 주고 기쁨을 살 수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 기쁨이 점점 커진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물론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도 피어나는 꽃을 보며 꽃이 질 것을 미리 생각하지는 않겠다. 꽃이 피어있는 동안 기뻐하면 될 일이다. 지금은 이제껏 본 적이 없던 새로 만난 수국에 마음이 함빡 가 있지만, 이제 곧 매화에, 벚꽃에, 신록에, 장미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나는 늘 어딘가에 내 마음을 빼앗기고 싶다. 죽을 때까지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