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교단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monfresh May 20. 2022

오늘도 무사히

아이들이 삼삼오오 등교를 한다. 학부모들이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경우도 고 친구와 같이 오거나 형제자매와 같이 등교를 하기도 한다.


형제자매들은 대부분 같이 다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형제가 있는데 그 아이들은 따로따로 온다.  대부분은 형이 먼저 오고 나서  뒤에 동생이 온다. 각각 떨어져 오더라도 형제라는 것은 모를 수가 없다. 얼굴, 머리 스타일, 표정, 걸음걸이 등 그냥 척 보면 답이 나온다. 아까 저렇게 생긴 애를 보았는데 그런 애가 또 있어서 처음에는 걔가 걘 줄 알았었다.


어떤 형제들은 옷이 커플룩이다. 형과 동생의 점퍼가 같은 브랜드 같은 디자인이다. 형제라고 글씨로 쓰여있지는 않아도 이미 옷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누나와 남동생도 있다. 지난 삼월에 한 번은 한 여자아이가 1학년 동생을 데리고 오면서 인사를 했다. 동생은 누나 뒤로 숨었다. 누나가 동생에게 말했다. “야, 인사를 해.”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얘는 교장 선생님만 보면 이래요.” 동생이 인사를 안 한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삼사 학년이 되면 부모와 같이 오는 아이들이 많이 줄어든다. 저학년에 동생이 있어서 엄마나 아빠가 데리고 오는 경우는 같이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온다. 그래도 한결같이 동반 등교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여자아이는 날마다 아빠가 손을 잡고 데려다준다. 저 정도 컸으면 저건 좀 예외적으로 보인다. 아빠는 키도 크고 늘 깔끔한 인상이다. 아이도 그렇다. 인사도 늘 얌전하게 하고 지나간다. 저 소공녀가 쉬는 시간에 아이들하고 뭐 하고 노는지 궁금한 생각이 다.


어떤 여자아이는 6학년 오빠가 데리고 등교한다. 오빠는 키가 훌쩍 크고 머리는 노란 염색이다. 옷은 언제든 운동장 나가서 뛸 수 있는 차림이다. 최고학년인 만큼 의젓하고 말수가 적다. 동생도 비슷하게 생겼는데 여자 버전이고 미니 사이즈다. 저 아이는 저런 오빠가 있어서 무서운 거 없겠다. 든든하기는 날마다 아빠가 손잡고 데려다주는 아이보다 쟤가 낫겠다. 아빠는 교문에서 바이 바이 하지만 저 오빠는 계속 학교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남매는 위아래가 거꾸로 되었다. 여동생이 오빠의 가방끈을 뒤에서 붙잡고 통제하고 있었다. 오빠가 무슨 장난을 쳤는지 모르지만 동생한테 잡혀서 꼼짝없이 교문 쪽으로 떠밀려 간다.


오늘은 교문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아이를 만났다. 한참을 서 있기에 내가 물어보았다.

“누구 기다리니?”

“네.”

“누구? 친구?”

“아뇨. 동생이요.”

자신은 보통 친구들과 먼저 등교를 하고 남동생은 엄마가 데리고 등교를 한단다. 그런데 자기가 다시  나와서 기다리는 이유는 교문에서부터 교실까지 데려다주려고 그러는 것이라 한다.

“날마다 네가 교실에 데려다 주니?”

“아니요. 학교 가기 싫다고 하는 날만 데려다줘요. 동생이 발달이 좀 늦어서요.”

드디어 엄마와 남동생이 왔다. 발달이 좀 늦는다기에 어떤가 했는데  다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까닭이 있겠지만 엄마와 누나의 눈에는 더 미덥지 않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자 애들 한 무리가 몰려오다가 한 아이가 ‘하나 둘 셋~!’ 신호를  “안녕하세요?”하는 합창이 들려왔다. 자기들이 하고서 자기들이 재미있어서 까르르 웃는다. 그중 한 아이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내게 오더니 건의 사항이 있다고 했다.

“교장선생님, @#시간 좀 없애주세요~!”

“뭐를 없애달라고?”

“체육 시간요~!!”

“정말?”

옆에서 다른 친구들이 황급하게 부인했다.

“아니요. 아니에요!!”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 팔을 한 짝씩 붙들린 채 끌려 들어갔다. 아주 과장된 몸짓으로 내게 구해달라고 했지만 나는 가볍게 외면했다.

‘저런 큰일 날 소리를~! 체육 시간 없앴다가는 너뿐 아니라 나까지 학교에서 쫓겨날걸?!!’

나는 늘 귀가 얇아 걱정인데 오늘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즉석 상황극이 재미있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아이들이 ‘오늘도 무사히’ 등교를 했다. 그리고 ‘오늘도 무사히’ 하교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날마다 무사하고 즐거운 학교가 되기를 나는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각자의 입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