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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un 08. 2022

철학자를 만났다

어느 날은 아침에 교문 앞에 서 있다가 한 철학자를 만났다. 중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인데 표정이 심각한 건지 심드렁한 건지 늘 그렇다. 걸음도 느릿느릿하고 서두르는 법이 없다.


언젠가는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교장선생님은 학교가 네모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잠깐 생각해보고 나서 솔직하게 말했다.

"글쎄, 나는 별 생각이 없는데?!"


언젠가 학교 공간에 대한 연수에 가서 듣자 하니 학교가 네모난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더라만 나는 그렇게 까지는 아니다. 나도 우리 학교가 그 교수님이 디자인했다는 그런 학교였으면 좋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도 괜찮다. 편리하고 깨끗하고 견고하고 유지 관리 어렵지 않고 하면 만족한다. 내가 다른 애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잠깐 한눈을 팔고 나서 질문을 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 철학자는 나를 지나쳐서 앞만 보고 걸어갔다. 뒤돌아보지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질문은 자기가 할 뿐 받지는 않는가 보다.


그런데 그 철학자는 이상하게 내 눈에 잘 띈다. 일 층은 행정실, 회의실, 교장실, 교무실, 보건실 등이어서 수업이 시작되고 나면 아이들하고는 동선이 겹칠 일이 별로 없다. 그 아이가 눈에 띈다는 것은 자기 구역을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으면 그저 쉬는 시간이라 나왔다고도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라고도 했다. 그냥 바람 쐬러 나와서 한 바퀴 돌아보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는데 화장실 핑계는 좀 이상하다. 학년별로 쓰는 화장실이 따로 있는데 굳이 일층을 내려 올 일은 없을 터이다. 아무래도 그 철학자가 무리에서의 도피처를 찾아 내려온 게 아닌가 싶다.

"지금도 쉬는 시간 맞아? 공부 시작한 거 아니야?"

"아, 그래서 지금 올라가는 중이에요."


아무래도 담임선생님이 알고 있는 상황인지 확인이 필요해서 교감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알아봐 주셨다. 담임선생님도 지켜보고 있는 아이이기는 한데 문제 된 적은 없었단다. 아마도 수업에 늦게 들어가더라도 표 날 정도는 아닌가 보았다. 그래도 세상 아무 재미도 없다는 저 표정은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러던 어느 날 똑같은 애를 또 발견했다. 진짜 똑 같이 생겼다. 물어보니 그 아이의 동생이고 한 학년 아래란다. 얼굴도 똑같지만 특히 그 시니컬한 표정이 똑같다.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와 무심한 듯 심드렁한 태도도 똑같다. 그 두 형제는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다고 다른 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보지 못했다. 아마  다른 애들에게도 내게 한 것처럼 함께 이어가기 어려운 이야기를 시도했다가 그만 대화가 단절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 살 어린 철학자가 또 있다니 한편 웃음도 나고 한편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그 동생 철학자를 통해 알아낸 것은 자기는 3학년 바름 반이고 형은 4학년 마음 반이라는 것이다. 이름도 물어봤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데다가 나는 귀가 예민하지 않아서 정확히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오늘 아침에는 일이 학년 되어 보이는 쌍둥이 형제를 보았다. 서로 손을 꼭 잡고 있어서 왼쪽 애가 오른쪽 애를 잡은 건지 오른쪽 애가 왼쪽 애를 잡은 건지 모르겠다. 현관 앞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을 때 손을 놓는 것을 보았는데 다시 손을 잡고 들어갔는지 따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먼저 그 형제를 생각하면 참 극과 극이다. 저 우애 좋은 쌍둥이 엄마는 참 흐뭇하겠다.


그렇다고 철학자 형제 엄마가 나쁠 거라는 뜻은 아니다. 그 집은 그 집대로 행복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엄마는 아파트가, 또는 방들이, 창문이 네모난 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정도는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그 엄마가 두 형제의 세상을 보는 시각과 대하는 태도를 너끈히 감당하고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학교에서는 보편적인 생각과 생활을 가르치면 되게 말이다. 사실 학교는 그런 일만 해도 벅차다. 요즘엔 아이들 개성이 다들 뚜렷한 데다가 모두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한데 아울러서 가르쳐야 하는데 다른 이의 생각과 내 생각을 조화롭게 조율할 줄 아는 아이들이 갈수록 귀해지고 있다. 학교가 맡고 있는 과제가 점점 무겁고 까다로워지는 느낌이다.


*추기

그 철학자 형제가 어느 순간에 보니 둘이 손을 잡고 등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따로 오더라도 멀지 않은 거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안심했다. 구체적으로 뭐가 안심인지는 명확치 않은데 하여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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