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Nov 09. 2022
지난주의 일이다. 오후에 인근 학교에서 협의가 있어 출장을 가 있었는데 행정실에서 문자와 사진이 왔다. 학교 옆 산을 깎아 대형 마켓을 짓고 있는데 공사장에서 바위가 굴러 학교 진입로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다행히 그때 통행하는 사람이나 차량이 없어 피해는 없었다고 했다.
행정실에서 바로 현장 공사팀에 연락을 해서 사실 확인을 하도록 했고 교육청에도 전화 보고를 했다. 그리고 공사현장에서 사람들이 나와보고 바위를 치웠다. 교육청에서도 담당자가 나와서 현장을 보고 갔다. 시청 관련과에는 교육청에서 공문으로 연락을 한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대응대책을 논의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할 대상은 누구누구인지, 학생들에게는 어떤 것을 주의하라고 해야 할 것인지, 학부모에게는 어디까지 알려야 할 것인지 등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학생들의 안전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인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공사 관련 위험 요소는 무엇인지, 위험방지 시설은 기준에 맞게 설치된 것인지 등 학교차원에서 알기 어려운 일들도 많이 있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일단은 어떤 일이 일어났고 학교에서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학부모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우려되는 것은 그런 소식이 나갔을 때 그 파장이 걷잡을 수 없게 퍼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림 문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있는 일 그대로를 알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모아졌다. 그래야 빗발치는 학부모 문의 또는 항의(?) 전화 및 부정확한 소문으로 불안이 증폭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어느 장소로, 얼마 만한 바위가 떨어졌는지 상세하게 알리고 진출입시 주의할 것을 안내했다. 바위의 크기가 지름 80센티 정도로 커서 그지점을 누군가 지나고 있었다면 크나큰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실 따지자면 이런 사고는 학교의 잘못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럼 학교는 무슨 일을 했느냐, 어떤 예방대책이 있었느냐 등 학교에 잘잘못을 따지는 경우가 있어서 학교로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학부모들에게 안내 문자가 나가자 바로 전화가 왔다. 바위가 떨어진 모습의 사진을 보내 달란다. 그런데 마침 전화를 하신 분이 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어서 파일을 보내드릴 수는 없고 학교로 오시라고 했다. 그분도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 임원과 학부모 대표도 오시라고 해서 함께 의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생각보다 커지게 되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오신다는 것이다. 운영위원 중 시의원인 분이 있어서 그분께는 오시라고 연락을 했지만 국회의원이 오신다는 것은 생각 밖의 일이어서 당황을 했다. 학부모에게 알리고 나니 그들의 인맥에서 연락이 된 것 같았다. 학교로서는 예상 못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학교에서 요구할 때는 미온적이던 공사 주관사에서 즉각 학교로 왔다. 이래서 힘이 있는 게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바위가 굴러 떨어진 시점이 이태원 사고 후 며칠 안된 때여서 다들 안전문제에 민감한 것도 국회의원까지 오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염려되었던 파문의 확장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 같아 난감한 생각도 들었다. 시청에서 시공사에 공사를 일주일 중단하고 그 안에 재발 방지대책을 하라고 했다. 시공사측에서는 돌이 구르더라도 도중에 막히도록 비탈면에 언덕을 두 겹 만들고 길 옆으로는 톤 백을 쌓아서 낙석이 생기더라도 진입로로 나오지 않게 한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학교 밖의 사람들이 나서 주는 것이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내 선에서 대응을 한다면 공사 주체 측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주세요." 했을 것이고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하면 더 이상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어떤 안전 대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후유' 하고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공사하는 측에서 유야무야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 행정실장이 출근을 하더니 내게 좀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말을 했다. 교육청에서 관련 책임 과장이 그 일을 모르고 있다가 외부 에서 들었다는 것이다. 어느 도의원이 그에 대해 물었는데 교육청 과장은 우리 학교 일을 몰랐었다고 한다. 교육장님도 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왜 교육청 보고라인을 건너뛰고 의원들의 힘을 동원했는지 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었다. 제일 먼저 보고를 한 곳이 교육청이었고, 교육청을 건너뛰어 외부의 힘을 빌리려고 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내가 교육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속실에서 받았는데 교육장님은 회의 중이시라고 나중에 전해 드린다고 했다. 얼마 있다가 교육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나는 일이 외부로 확산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교육장님은 그런 것은 상관없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얼마나 놀랐겠나, 학교는 교장선생님이 잘 지키고 계시니 든든하다, 다만 공사 관련되는 학교가 우리 학교 외에도 많이 있어서 안전대책은 더 살펴보라고 했다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말씀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에 도교육청 장학관께 전화를 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쪽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은연중 문제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것을 알게 하고, 그러면서도 서운한 맘이 들지 않게 하는 고도의 친절함과 세련된 화법에 내심 놀랐었다.
이번 주 중으로 공사 주체 측에서 다시 학교로 와서 시청 관계자, 교육청 관계자가 있는 자리에서 보강된 안전대책을 설명을 해 준다고 한다. 공사 관련 안전은 비단 학교에만 관련된 일이 아니고 인근 주민 등 전체적인 측면이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다시 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임원을 오시라고 할 예정이다.
오늘 오전에도 서울서 내려왔다는 공사 관련 본부장님의 방문을 받았다.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를 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학교는 아이들 가르치는 것 이외에 공사 관련 등은 아는 게 없으므로 그쪽의 전문가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아이들 가르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정말 학교 안의 일에만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내가 잘 모르는 일, 내 범위 바깥의 일을 걱정해야 할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엔 잘 못 느꼈는데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