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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Nov 20. 2020

아이를 만나다

교장선생님의 교단일기

<아이를 만나다>
 
어제 5학년 00이를 교장실에 초대했다. 나를 보면 언제나 남다르게 환영해 준다. 놀라운 친화력이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00이 요새도 리코더 잘해?”
“리코더요? 네. 잘하고 있어요.”
그럴 줄 알았다. 전에 00이가 3학년 때 나에게 말했었다.
“저 내년에 4학년 돼요. 너무 좋아요.”
“그래? 뭐가 좋은데?”
“오카리나 배우잖아요.”
3학년 때 배운 리코더도 재미있었지만 오카리나 소리가 더 좋다고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00이는 4학년 때 오카리나를 배우지 못했다. 리코더는 교과서에 나오는 악기지만 오카리나는 선택 악기였다. 당시 4학년 선생님들이 창의체험시간에 동아리 활동으로 가르쳐 주신 거였는데 새로 올라간 4학년에서는 오카리나가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우쿨렐레가 선택되었다. 마침 도교육청의 악기 지원 사업에 응모를 해서 우쿨렐레와 기타를 한 학급이 동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갖추게 된 것이다. 그래서 4학년 아이들은 우쿨렐레를 배우게 되었다. 물론 00이는 그것도 아주 잘했다.
“00이, 다른 공부는 어때? 잘하고 있어?”
“수학은 조금 어려워요.”
“그래? 학교 방과후 공부방에서 공부하면 되는데 다니고 있어?”
대답은 ‘아니요.’였고 이유를 묻자 핑계를 댔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첫 번째 핑계가 스스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자 공부방 공부가 자기 스타일과 달라서 잘 못하겠다는 핑계를 추가로 댔다.
“그럼 너 스스로 한 번 계획을 세워봐. 그리고 내일 교장실 다시 와서 이야기해 줘.”
 
오늘 00이가 다시 왔다. 우선은 00이가 나한테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학급에서 리코더로 Moon River 연주를 했는데 자기가 한 번에 통과를 했다 한다.
“어, 잘했네. 그런 거 어떻게 그렇게 잘해? 연습 많이 했어?”
“그냥 한 번 보면 알아요.”
“그래? 요즘도 오카리나 관심 있어?”
“네. 오카리나도 배우고 있어요.”
“누구한테?”
“따로 누구한테 배우는 건 아니고 그냥 혼자서 하는 거예요.”
“그래도 맨 처음에 (오카리나) 부는 방법은 배워야 되지 않아?”
“아, 해 보면 알 수 있어요.”
혼자서 배운다는 이야기, 어제도 다른 아이한테 들은 적이 있다. 자기들이 관심이 있는 영역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수학 공부 계획은 세웠어?”
당연히 세워왔단다. 그런데 결론은 키가 160 센티미터가 넘으면 그때부터 공부할 거라 한다.
“저희 엄마는 공부보다 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거든요.”
오빠는 중학교 2학년인데 곧 180센티미터가 될 예상이고 그때부터는 엄마가 공부를 시킨다고 했단다. 엄마가 이과 출신이라 수학 공부를 도와줄 수 있다고. 그리고 자기는 160센티미터가 목표라 한다.
“그러니? 그럼 160센티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야?”
“아뇨. 그 전에도 열심히 할 거지만 그 뒤에 좀 더 노력할 거예요.”
"그래. 그 전에도 열심히 할 거지?"
우선 공부 시간에 수업 잘 듣고, 집에 가서는 엄마의 도움을 받겠다고 하니 적절한 해결책이 될 듯했다. 교직에 올해로 39년째 있는 동안 수학 공부를 하는 시점을 키로 기준 삼는 것은 처음 보았지만 기준 도달 여부는 선명히 알 수 있겠다. 그런데 도달 시기 예측은 매우 불투명해 보였다. 여하간 00은 자기의 설명에 스스로 만족했는지 평소보다 얌전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00이가 가고 나서 생각했다.
“누구한테 배우는 건 아니고 그냥 혼자서 하는 거예요.”
그 말은 어제 또 다른 아이인 6학년 ㅎㅅ이가 한 말이었다.
“지금은 혼자서 독학하고 있어요.”
두 아이에게 연속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 무척 흐뭇했다. 시간이 나면 또 다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한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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