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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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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Nov 23. 2020

아이를 만나다 2

교장선생님의 교단일기

지난번에 5학년 00이가 교장실에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6학년 ㅎㅅ이를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불렀는데 내려온 것이다. ㅎㅅ이를 들어오라고 이르고 00이를 보냈다.
“그럼 00이는 공부계획 세워서 내일 다시 와~!”
“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ㅎㅅ이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ㅎㅅ이는 4학년 때부터 그 이름을 익히 보았던 아이다. 우리 학교는 매월 학년별 다독학생 이름을 게시판에 붙이는데 ㅎㅅ이는 달마다 맨 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어느 날 게시판에 우수학생 명단을 새로 붙인 것을 보고 앞을 지나는데 명단을 보던 여자 아이들 몇이 내게 인사를 하며 한 아이를 소개했다.            
“얘가 바로 ㅎㅅ이에요. 저기 쓰여 있는 박ㅎㅅ!”
“어, 얘가 ㅎㅅ이야? 누군지 궁금했는데 바로 너구나~!”
학년말에 일 년간 기록을 망라한 우수학생 명단이 결재 올라왔을 때 보니 학교도서관 대출 기록이 총 788권, 한 줄 감상평 쓴 것이 총 532회였다. 같은 학년의 그다음 기록이 200 권대인 것을 감안하면 월등한 것이었다.

그리고 5학년이 되었다. 역시 빠짐없이 게시판의 명단에 ㅎㅅ이의 이름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도 격려차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여전히 책을 많이 보는구나.”
“네. 그런데 올해는 작년만큼은 못 보았어요.”
그러나 5학년 기록도 604권으로 매우 우수했고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용이 더 많은 책을 보기 때문에 독서 권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 도서관이 거의 문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ㅎㅅ이의 이름이 다른 데서 눈에 띄었다. 온라인 영어 도서관 이용 우수학생에 ㅎㅅ이의 이름이 올라온 것이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에게 ㅎㅅ이를 교장실에 한 번 보내달라고 했다. ㅎㅅ이가 무슨일인가하여 긴장한 얼굴로 왔다.
“어서 와. ㅎㅅ이 영어 온라인 도서관도 이용 잘해서 칭찬해 주려고 오라고 했어.”
“네. 감사합니다.”
“요새는 도서관 문 안 열어서 책 읽기 어렵겠네?”
코로나 사태로 학교도서관 운영을 못했었다.
“그래서 요즘은 e-book 보고 있어요.”
“그래? 어느 사이트 이용하는데?”
“‘북슐랭’이라고 휴대폰으로 볼 수 있어요.”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북슐랭’을 천천히 말해 주었다.
“아 그래? 무료로 읽을 수 있는 거야?”
“돈을 내는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무료로 읽고 있어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ㅎㅅ이가 방법을 찾아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맞는 말이다.
“잘했네. 원하는 책이 거기 다 있니?”
“있는 것 중에서 골라서 읽고요, 더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시립) 가요.”
ㅎㅅ이는 어떤 걸 묻던지 자기의 생각과 방법이 있었고 얌전하면서도 막힘이 없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의 단단함과 조용하면서도 예의 바른 태도, 딱 적절한 만큼의 대응 등 모든 면이 놀라웠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는 걸 깜박 잊었다. 그리고 아이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ㅎㅅ이는 어떻게 저런 아이가 되었을까? 저런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ㅎㅅ이 공부도 잘하던데?”
ㅎㅅ이를 오라고 하고서 찾아보니 학과공부도 우수한 편이었다. 더 잘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면 훌륭했다.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어?”
“요즘은 독학하고 있어요. 전에는 학원에도 다녔고요.”
혼자서도 할 만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하는데? 교과서로 하니?”
“문제집 풀어요.”
“문제집? 수학 같은 거?”
“수학도 하고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다 해요.”
“하루에 그걸 다 한다고?”
“네. 분량을 정해서 날마다 정한 만큼 하고 있어요.”
“문제집 풀면 도움이 되니?”
“내용정리가 되어 있어서 도움이 돼요. 내가 어떤 걸 더 공부해야 할 지도 알 수 있고요.”
그냥 막연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 생각이 있었고 논리가 정연했다. 엄마 아빠는 모두 일을 하시기 때문에 집에 가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에 공부를 한다고 한다.
“영어도 하니?”
“영어도 하는데 요즘 학원을 알아보고 있어요.”
“그래? 왜?”
“이제 중학교도 가야 하는데 문법공부는 혼자 하기 어려워서요,”
“학원도 네가 알아보는 거니?”
“엄마랑 같이요.”
“그렇게 하고도 책 읽을 시간이 있어?”
“공부 오래 안 해요. 그리고 공부 너무 많이 했다 싶으면 놀아요.”
“논다고? 뭐 하면서?”
“휴대폰으로 유튜브도 보고...”
“ㅎㅅ이도 휴대폰 하면서 놀기도 하는구나. 주로 무얼 보니?”
“제가 드라마를 좋아해서 ‘하이킥’ 보고 있어요.”
그리고는 잘 모를 수도 있는 나를 위해 짧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영화도 보는데 최근에 본 것으로는 ‘레 미제라블’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책만 보거나 공부만 하는 아이도 아니고, 혼자서 할 일 해 가면서 생활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혼잣말처럼 물었다.
“어떻게 하면 ㅎㅅ이처럼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희선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른들 생각에는 아이들이 잘 못하고 미덥지 않아도 기다려주면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희 반 ♡♡이도 자기가 관심 있는 공부는 열심히 하잖아요. 어른들은 공부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는 ㅎㅅ이와 같은 반으로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남자아이인데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길다. 다른 건 다 관두고 역사 공부만 한다. 한 번은 어느 책에서 연도오류를 찾아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출판사에 알려준 적도 있다. 출판사에서 확인해 보고 고맙다는 전화가 왔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ㅎㅅ이가 한 말의 요점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려고 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다만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마치 육아 전문 컨설턴트에게서들을만한 이야기를 ㅎㅅ이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00이를 내 보내면서 “수학 공부 계획을 세워가지고 오라.”고 이야기한 것이 마음 걸렸다. 
“그래. ㅎㅅ이 말이 맞아. 그래서 우리 학교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교장선생님도 노력하고 있어.”

나는 아이들 가르치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았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저렇게 자기 주도적이면서 생각이 꽉 찬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지 아직도 뚜렷한 비법은 알아내지 못하였다. 백 명의 아이들에게는 백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로 표준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가르치는 동안 나름대로의 성장을 이루는 것을 목표 삼았고 그에 보람과 감사를 느꼈었다.


“이야... ㅎㅅ이는 정말 훌륭하구나. 나중에 어른 되었을 때 어떻게 되었을지 참 궁금하다.”
나는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게 늘 궁금했었다. ㅎㅅ이도 그중의 한 명이 될 것이다. 사회적인 성공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삶을 가꾸어 나가는 것은 이미 보장되어 보였다.
“오늘 이야기 즐거웠어. 다음에 또 보자.”

*    *    *

그리고 며칠 후 다른 일로 ㅎㅅ이 담임선생님이 ㅎㅅ이를 데리고 교장실에 오셨다.
“자랑할 것이 있어서요,”
ㅎㅅ이가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한 독후감 대회에 글을 써서 보냈는데 거기서 뽑혔고 상으로 만 원짜리 상품권을 받았다 한다.
“그런데 ㅎㅅ이가 무슨 책 샀는지 아세요?”
“무슨 책을 샀는데요?”
“독일어 회화 책을 샀대요. 초등학생인데 생각 정말 남다르죠?”
나중에 독일 유학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한 번 보려고 샀다고 한다. 그래서 칭찬을 해주고 말했다.
“독일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면 해 줄 말이 있으니까 언제 교장실 한 번 와.”
“네.”
대답은 했는데 진짜 올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시간 날 때 따로 한 번 불러서 ㅎㅅ이의 생각을 들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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