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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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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an 30. 2019

괜찮은 결말, 그 거면 됐다

교장선생님의 교단일기

지지난 달 전교학생회에서 건의사항이 올라왔다. ‘운동장에 쓰레기통을 놓아 달라.’는 것이었다. 버리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관리를 학생회에서 스스로 한다면 쓰레기통을 놓아 주겠다.'

 

'학생회에서 관리를 한다면’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멈칫했다. 쓰레기통 사용만 생각했지 관리를 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일단 아이들도 체면이 있으니 ‘저희들이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학생회에서 누가 어느 날 쓰레기통을 비울지 표를 만들어서 다시 교장실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나는 행정실에 쓰레기통 두 개를 사라고 우선 일러놓았다. 다음 날 학생회장이 날짜와 담당자 이름이 적힌 표를 들고 왔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 운동장에 쓰레기통 두 개가 운용되었다.

 

얼마 후 상황을 확인해 보았다. 아주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대체로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또 한 달이 흘렀다.  

 

학생회 임원들이 이번 달 회의 결과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런데 건의 사항에 ‘운동장 쓰레기통을 치워 달라.’고 적혀있었다.

 

“어? 지난번에 놓아달라고 한 거 아니었나?”

“네.”

“그런데 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고한다. 첫째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쓰레기통인데 출처불명의 쓰레기가 자꾸 모인다고 했다. 둘째는 쓰레기통 사용자들이 재활용품을 분리하지 않고 섞어버려서 이의 처리가 어렵더란다. 셋째는 쓰레기통 중에 하나가 벌써 깨졌다고 한다. 공에 맞았는지 발에 차였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처음에 쓰레기통을 놓아달라고 할 때 이미 예견되었던 일들이다. 그래도 학생회에서 잘 해보겠다고 해서 그렇게 해라 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치워달라고?”

“네.”

아마도 처음에 몇 번은 자발적으로 했지만 한번 순번이 다 돌아가자 아이들 의욕도 감퇴되었고 방학이 다가오니 더 이상 관리도 어렵고 해서 치우자고 의견이 모아진 듯 싶었다. 그래서 나도 더 묻지 않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만족하고 가벼워진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도 만족했다. 학생들이 해보겠다고 할 때 만류하지 않고 들어주길 잘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괜찮은 결말'이었고 '그 거면 됐다'.  

 

아이들 키우는 일이 거의 그렇다. 실패든 성공이든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쓰레기통을 놓는 것도 치우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책공부 말고 경험공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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