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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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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Aug 09. 2022

휴가를 다녀와서 알게 된 것

방학을 이용해 닷새 휴가를 냈다. 그중에는 울릉도 여행도 있고 휴식도 있었다. 주말까지 지내고 나서 출근하니 아주 오랫동안 떠나있던 자리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행정실에 들러보니 방학 중 진행하는 여러 공사로 바빴다. 교무실에도 선생님들이 여럿 나와 있었다. 방학 중에도 캠프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유치원은 방학 중에도 거의 학기 중만큼 아이들이 나온다. 급식실도 전 직원이 나와서 청소와 소독을 하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다시 교무실에 들렀다. 그리고 내가 농담 삼아 말했다.

“마치 학교에 백 년 만에 온 기분이네.”

며칠 만에 출근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교무부장은 내 기분을 곧 알아들었다. 그이도 방학 중 출장이나 연수 참석 외에는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그이가 내게 말했다.

“학교에 오니 좋으시죠?”

“네. 좋아요. 몸에 피가 다시 도네요.”


오후에 카톡이 왔다. 휴가 때 같이 울릉도 여행을 한 선배였다.

“좀 쉬었어요?”

내가 답을 했다.

“네. 주말 푹 쉬고 학교 출근했어요.”

그런데 그 선배 답신이 이랬다.

“나도 오늘 출근했어요. '학교'에 오니 쉬는 것 같아요.”


이 대화가 아이러니한 것은 그 선배는 8월 말 정년퇴직이라는 것이다. 지난번 울릉도 여행의 핑계도 그 선배의 퇴직 기념이었다. 나는 ‘학교에 오니 쉬는 것 같아요.’ 하는 말을 읽고 웃었다. 유머 코드를 숨겨 놓았지만 나는 알겠다. 액면 그대로의 뜻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 두 가지 의미에 모두 공감이 갔다.


여행을 떠나보아야 집의 소중함을 안다. 사실 나는 여행 이틀째부터 집에 가고 싶었다. 마찬가지로 휴가를 떠나보아야 직장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 휴가를 지내고 나서 학교가 나의 일터이고 터이고 내 의식과 무의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것도 참 번번이 그렇다. 늘상 학교에 있을 때에는 모르겠다가 학교를 잠시 떠나있게 되면 그 때마다 그런 각성이 들곤 했다.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나도 퇴직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다. 이제 동기들 이름이 차차 퇴직자 명단에 라오고 있다. 지난 2월, 올 8월, 내년 2월 등 각자의 나이대로 퇴직 시기를 맞는 것이다. 거기다 후배들도 퇴직 신청을 한다고 한다. 교장 임기 8년을 마친 사람들이 그 싯점에서 명예퇴직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동기들 보다 한 살 어리고 주민등록상으로는 한 살이  더 어리게 되어 있어서 앞으로 이 년의 시간이 있다. 나는 승진이 늦었던 관계로 정년까지 하더라도 교장 임기를 다 소진하지 못한다. 그래도 늘 명예퇴직을 마음 한구석에 지니고 있었다. 어려운 문제에 닥칠 때마다 책임과 멍에에서 자유로운 삶을 앞당기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기들도 가까운 후배들도 빠져나가고 보면 공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휴가를 다녀와서 그 생각을 집어넣었다. 학교에 가니 다시 ‘내가 알던’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피가 돈다’는 말이 생리적으로는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울릉도에서 나오는 배에서 퇴직하신 선배님의 전화를 받았다. 그분 말씀이 '지금 얼마나 소중한 시간에 있는지 알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진심어린 충고를 마음에 잘 새겼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동안 명예퇴직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 시간을 뜻있게 지낼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이 내게도, 내가 맡은 직무에도 좋을 것이다.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능력과 안목이 성장하지만 휴가를 지내는 동안에는 생각이 자란다는 것을 알겠다. 여름방학식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할 때 이 소중한 시간이 아깝지 않게 재미나게 놀거나 열심히 배우거나 할 것을 당부했었다. 이제 방학이 거의 지났고 개학이 일주일 후로 다가왔다. 아이들도 방학 동안 평소와 다른 성장이 있었을 것이다. 개학식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인사를 할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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