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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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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an 04. 2024

큰절을 받다

6학년 아이들이 졸업을 하기 열흘쯤 전의 일이다. 점심시간에 남학생 둘이 교장실을 찾아왔다. 아이들이 직접 교장실을 찾아오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용건은 대부분 둘 중 하나다. 정제되지 않은 민원이거나 개인적인 친선방문이다. 가끔 공부시간에 쓰는 감사편지를 내게 써서 가져다준다. 그런데 이번엔 상대가 6학년, 그것도 남자애들이어서 그런 곰살맞은 이유는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얼굴이 낯익었다.

“들어와. 무슨 일로 왔어?”

“여쭐 것이 있는데요.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께 졸업장 받을 때 인사 대신 절을 해도 돼요?”

아, 그러고 보니 왜 낯이 익었는지 알겠다. 전에도 교장실 앞 복도에서 내게 넙죽 엎드려 절을 했던 그 아이다.

“절을?”

내가 잠깐 생각해 보았다. 졸업장은 무대 위로 한 명씩 올라와 개별적으로 받고 인사를 하고 내려간다. 졸업생들이 170명쯤 되는데 그중 한두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졸업식장에서는 곤란하고 절을 하려면 따로 와서 해라.”

“어, 그러면 지금 여기서 할까요?”

졸업식은 앞으로도 한 열흘 남았다. 미리 인사를 하면 앞으로 교내에서 마주칠 때 뭔가 어색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이들이 기다릴 새도 없이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그래. 고맙다. 졸업 축하해~!!”

그래서 얼떨결에 절을 받았다. 아이들이 가면서 소속을 밝혔다.

“6학년 가람 반입니다.”

지난번에도 절을 하고 나서 6학년 가람 반을 강조했었다. 아마도 담임 선생님께 두 아이가 절을 하러 왔었다는 것을 알려야 할 것 같다.  

    

편지도 받았다. 6학년 여자아이인데 학생회 대표로 가끔 교장실에 왔었고 중학교 진학 과정에서 따로 교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그동안 감사했다는 것과 초등학교를 떠나는 아쉬움을 적은 것이었다. 그리고 유치원을 졸업하는 아이의 어머님께도 편지를 받았다. 그동안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신 것을 감사한다는 내용이고 ‘OO 가족’이라고 쓰여있었다.      


졸업식 당일에는 손님 맞으랴 졸업장 수여하랴 격려사 하랴 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무척 빠를 것이고 또한 느리기도 할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빠르고 기다리는 시간은 항상 느리니 말이다. 졸업식을 마치고 아이들 몇몇이 개인적인 인사를 하러 왔다. 이번 졸업식은 내 교직 생애 마지막 졸업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해 왔던 일상적인 일들이 하나하나 의미를 더해간다. 오늘은 마지막 졸업식, 3월에는 마지막 입학식, 그리고 마지막 여름방학이 지나면 나의 기나긴 교직 여정이 끝난다. 나는 그동안 학교에 다니는 것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내가 교단에 서지 않았다면 지금 무얼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러한 내게 앞으로의 삶은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영역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내 자의식 속에서 나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평생 지닐 것 같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선생님으로 살았고 퇴직 이후에는 선생님이었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 마지막 졸업생들을 내보내면서 큰절도 받고 편지도 받았으니  보람과 위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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