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Aug 26. 2022
* 활짝 웃는 돌 사진
안방 문 옆 벽에 외손자 도현이의 돌 사진이 있다. 거기에 우리 가족사진을 모아 두었고, 호수 세하 도현이가 태어난 순서대로 각각의 돌 사진을 걸어놓았다. 그중에서도 맨 나중에 태어난 도현이 사진이 바로 방문 옆에 있어 들어갈 때마다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활짝 웃게 된다. 왜냐하면 도현이 얼굴이 하회탈처럼 활짝 웃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은 흐릿하게 블러 처리가 되었고 부각된 것은 단지 도현이의 얼굴뿐이다. 애기들 돌 사진이야 다 이쁘지만 이렇게 활짝 웃는 사진은 처음 보았다.
그런데 듣자하니 도현이의 돌 사진 촬영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울고 싫다는 돌배기를 달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도현이의 입장에서는 그랬을 법하다. 웬 낯선 곳에 데리고 가서는 눈부신 조명에, 시끄럽게 어르는 소리에, 이 옷 저 옷 갈아입히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데 엄마는 안아주지도 않고 저만큼 떨어져서는 자기더러 웃으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돌 사진에 표정이 좋게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어쩌다 활짝 웃었을 때 사진사가 솜씨 좋게 포착을 해서 해당 사진이 나온 것이다.
그래도 남는 것은 역시 사진뿐, 잘 안 나온 사진은 인화되지 않았고, 저렇게 환히 웃는 사진은 액자에 담겨 친가와 외가의 한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사진은 도현이의 첫돌을 기쁘게 기억하도록 해 주고 있다.
* 잘 먹었다.
출근을 하려고 아침을 먹었다. 메뉴는 열무김치, 된장찌개, 편육, 땅콩 조림이다. 어제 먹던 코다리 찜도 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말했다. “아, 잘 먹었다.”
그런데 실상 내가 먹은 것은 된장 국물과 열무김치 몇 조각이다. 거기다 밥은 물을 말아 먹었다. 하다못해 찌개에서 두부라도 건져 먹었던가, 편육이라도 한 조각 먹었던가 하면 ‘잘 먹었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뭘 먹었다고 잘 먹은 것인가? 사실 열무김치도 국물 위주로 먹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먹은 것은 밥, 물, 된장 국물, 김치 국물인 것이다. 그래도 엊저녁에는 코다리 찜을 두 조각 먹었다. 그리고 아쉬워서 한 조각 더 먹었다. 그런데 다른 것 안 먹고 밥하고 코다리찜만 먹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 잘 먹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굉장히 잘 먹고사는 줄 알겠다. 앞으로는 잘 먹고사는 것은 둘째치고 건강을 위해서 골고루 먹고 살아야겠다.
* 재미있게 산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생활 단편을 글로 써서 저장해 두는 것이다. 이건 일기 같기도 하고 글자로 된 앨범 같기도 하다.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쓴 지는 꽤 오래되었다. 내용은 주로 교단 일기와 생활단상인데 같이 연수를 다녀온 선생님들끼리 인터넷 카페에 에피소드를 공유하면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피플 475’라는 지금은 없어진 사이트를 거쳤고, 그 뒤로는 한동안 끊겼다가 카카오 스토리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브런치에 올리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를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내가 올린 글의 최대 독자는 바로 나다. 주 내용이 나의 생활과 생각의 기록이기 때문에 내게는 글 한편한편이 다 의미가 있다. 글로 남긴 기록이 있으면 십 년 전, 이십 년 전의 일도 기억을 되살릴 수 있고 그날의 생각과 느낌도 복원할 수 있다. 그래서 생활이 무료할 때, 또는 위로가 필요할 때 옛 사진을 들춰보듯 읽어보곤 한다. 그런데 오픈된 공간이다 보니 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생겼다. 친구도 있고 지인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고백할 게 있다. 사이트에 올라간 글들만 보면 내 세상은 고민과 그늘이 없는 밝고 따뜻한 일로만 채워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세상이 온통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그런 일들만 기록에 남긴 것이다. 나는 내 삶을 그렇게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마치 외손자 도현이의 돌 사진에서 울거나 찡그린 모습들은 빼고 활짝 웃는 모습만 액자에 담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내가 올린 글들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는 게 내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게 생활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글 잘 읽고 있어요. 사는 이야기 재미있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네. 사는 게 재미있을 때에만 쓰거든요.”
때때로 외로울 때, 사는 게 재미없고 인생의 맛이 씁쓸할 때 '내 삶은 의미있고 인생은 살만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즐거웠던 에피소드들을 모으는 중이다. 그래서 ‘양선 실록’에는 좋은 일들만 쓰여진다. 그리고 나는 이 기록을 후대에 남길 작정이다. 이를테면 딸이라든가... 아들은 잘 안 읽을 것 같고, 손자도 그럴 거고... 공감능력이 큰 손녀딸은 나중에 혹시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남겨도 읽을 사람이 별로 없기는 하다. 후대에는 관두고 내 생전에나 두고 읽어야겠다. 내 일생에 있었던 일들은 나에게나 중요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