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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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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Aug 30. 2022

여름이 지나가다

아침에 깨어보니 밖이 어둡고 빗소리가 났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서 긴소매 옷을 입고 출근했다. 비는 소리 없이 온종일 내렸다. 계절적으로 이 비의 의미는 가을을 확정 짓는 것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대문 앞 나무는 낙엽을 얼마씩 떨구고 있었다. 여름꽃들은 말라가고 가을꽃인 범의 꼬리가 분홍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주와 지지난 주말에는 제부도에 갔었다. 먼저 간 것은 친구들 모임 주선을 위한 사전 답사였고, 그다음에 간 것은 모임을 위해 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일주일 앞서 갔을 때는 여름이었는데 그다음 주에 갔을 때는 가을이었다는 것이다. 밝은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룻밤을 같이 묵고 헤어졌다. 이 가을을 다 지내고 겨울이 시작되는 경계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팔월 마지막 주와 십일월 마지막 주가 매년 정해진 모임 날짜여서 그렇다. 봄에는 사월 마지막 주, 벚꽃이 지고 나무마다 새잎이 피어나는 때에 만난다. 그 외에도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주로 자녀들의 혼사와 부모님이 돌아가신 때이다.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조금씩 늙어있다. 특히 코로나로 한참 못 만나는 동안에는 더욱 그랬다. 세월의 흔적은 서로 상대방에게서 보게 된다. 나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친구를 보면 알겠다. 그래서 친구가 늙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충격적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미 손자 손녀를 본, 이를테면 할머니가 된 친구들이 여럿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름꽃이 지고 나면 가을꽃이 핀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아직은 숯불같이 뜨거운 꽃들이 피어있기에 우리들의 가슴은 식지 않는다.’고.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은 ‘우리들의 가슴도 식고 있다’고. 몸이 먼저 늙지만 마음도 따라 늙고 있다. 그래도 여름의 끝자락에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은 잠시 설레었다. 가을에도 간혹은 여름 날씨가 나타나기도 하는 법이다. 숯불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아랫목만큼의 따뜻함은 간직하고 싶다.


* 숯불같이 뜨거운 꽃들이 피어있기에 우리들의 가슴은 식지 않는다 / 박성룡, '뜨거운 가을' 중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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