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Sep 01. 2022
지난 방학 때의 일이었다. 며칠 휴가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출근을 했다. 행정실 교무실로 한 바퀴 돌아보고 교장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도어록이 열리지 않았다. 이럴 리가...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했나 싶어 다시 한번 시도해보았다. 그런데 역시 안되었다. 할 수 없이 행정실에서 교장실로 연결된 탕비실을 거쳐서 들어갔다. 안에서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행정실 주무관님이 와서 해 보았는데도 안 되었다. 정 안되면 도어록 업자에게 의뢰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일단 유치원을 돌아보러 갔다.
다녀와 보니 문이 열려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들어보았더니 도어록이 문제가 아니고 돌려서 넣고 빼는 잠금장치가 잠겨 있었다고 한다. 내가 없는 동안 청소 여사님들이 교장실 청소를 하시고는 문을 잠그신 것이다. 방이 비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잠금 기능이 생각보다 강력해서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돌려서 잠금 해제라니, 그 구식 방법에 허를 찔리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오히려 신선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편리한 디지털 방식을 버리고 굳이 아날로그로 회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도어록에게 바라는 것은 절대로 안 열리게 해 달라는 것보다는 쉽게 잠그고 쉽게 열어달라는 것이다. 단 나에게만, 또는 내가 허락한 사람에게만 말이다. 또한 열쇠를 지니지 않아도 되는 것도 나같이 물건 간수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무척 편리한 기능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문을 열어줄지 말지를 판단하기 위해 문틈으로 손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엄마 손이면 열어주고 털이 숭숭 난 호랑이 손이면 열어주지 않는다. 돌려서 잠금해제는 사람은 가리지 않는다. 나사(?) 손잡이를 잘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디지털 도어록은 암호가 맞으면 열어준다. 집주인이라도 바른 암호를 대지 않으면 절대로 열어주지 않는다. 아날로그 잠금장치처럼 우격다짐도 안 통하고 살살 다루어야 한다. 예민한 데다 몸값도 비싸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이 번호 저 번호를 여러 번 눌렀다고 삑삑거리면서 이상 반응을 보였었다. 그래서 얼른 손 떼고 행정실을 통해서 들어갔던 거다. 도어락이 내게 신경질을 좀 부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이상이 있던 것은 아니어서 지금은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내가 비밀번호를 잊지 않는 한 언제든 잠금을 스르륵 해제해 줄 것이다. 지금 쓰는 비밀 번호는 내가 설정한 것이다. 행여 잊을까봐 최대한 단순하게 조합을 했다. 깜박하는 날에는 내 방 비밀번호가 나에게도 비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컴퓨터한테 한번 혼난 뒤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