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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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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Sep 11. 2022

추석 위드 코로나

추석 연휴 전날 아침의 일이다. 목이 좀 칼칼했다. 그래서 출근하기 전에 얼른 진단키트를 찾아서 테스트를 해 보았다. 빨간 줄이 한 줄 떴다. 음성이란 뜻이다. 다행이다. 어제도 목이 안 좋아서 혹시 몰라 자가진단을 했는데 음성이었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쯤 이비인후과를 갈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코가 안 좋았다가 다음에는 목이 문제가 된다. 치료를 받으면 한 일주일 있다가 겨우 호전이 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증상도 때마다 똑같다.


그날은 1학년 두 학급의  수업연구가 있었다. 그 주가 1학년 수업공개 주간이었는데 다른 학급들은 다 보았고 그 두학급만 보면 된다. 나는 수업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날마다 나가는 등교맞이도 이름만 짓고 들어갔다.  


미리 받았던 수업안을 챙겨 들고 교실로 올라갔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나도 소리 나지 않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고 자리에 앉아 수업을 보았다. 그리고 다른 한 반도 그렇게 했다. 교감선생님은 수업 참관 후에 어느 반 보결 수업을 하셔야 한다고 해서 나만 혼자 내려왔다. 수업을 두 시간 보고 내려오는 사이에 결재 건이 꽤 쌓였다. 특히 행정실 결재는 돈을 다루는 일이라 차질 없이 하려면 제때제때 결재를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급하지 않은 일이더라도 아침에 접수된 공문은 보아야 했다. 그래서 커피를 내리는 것도 미루고 우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라와 있던 문서들을 열어 보고 결재를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목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병원을 얼른 다녀와서 근무를 하는 게 나을 듯했다.


사실 평소라면 목이 약간 잠겼다고 해서 근무 중에 병원에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어떤 무의식이 나를 얼른 병원에 가야 한다고 종용을 하고 있었다. 자가진단 말고 얼른 병원에 가서 음성이라는 것을 확인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까지 올라와있는 결재 건만 급히 마무리하고 복무를 달았다. 병원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 기다리게 될 경우를 감안해서 한 시간 반 외출을 달아놓고 교무실 행정실 들러서 병원 다녀오겠다고 알린 후 병원에 갔다. 연휴 전날이라 그런지 병원은 다행히 사람이 없었다.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니 코로나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신속항원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잠시 후 결과를 알려주었다. '양성'이라고 했다. 떡하니 두 줄이 뜬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이 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 처음에는 검사를 해도 음성이 나오다가 두세 번째 가서야 양성이 나온다는 것이 근래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들의 공통된 경험이었다.


'아, 큰 일이다.'

출근을 하지 말 걸 그랬다. 아이들 수업 보러 교실에 까지 들어갔는데 잘못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교감 선생님과 유치원 원감 선생님, 행정실장에게 급히 사실을 알리고 뒤처리를 부탁했다. 잠깐 병원 들었다가 다시 들어갈 생각으로 나온 것이라 컴퓨터도 끄지 않았고 책상 위에 이것저것 벌여 놓은 것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내 동선마다 소독도 해야 될 것이다. 혹여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심란했다.


막상 양성 판정을 받고 보니 공사 간에 연락을 할 곳이 많았다. 우선 딸이 오늘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명절 전에 와서 하루 묵고 시댁으로 명절을 지내고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들도 모처럼 우리 집에서 같이 잔다고 해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얼른 알렸다. 엄마 께도 알려드리고 추석 다음날 형제들 모일 때  내가 등갈비 찜을 해 간다고 했었는데 그것도 얼른 취소를 했다. 조카 딸네에도 연락을 했다. 시댁이 우리 동네여서 명절 때마다 우리 집에 인사차 와서 한두 시간 놀고 가는데 이번에는 오지 말라고 미리 알려 주어야 했다. 15일 예정된 출장 건도 16일로 미루었고, 16일 있는 협의회는 못 간다고 알려야 한다. 13일은 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 사적 모임도 있는데 거기도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겠다.


집에 와 있으니 열이 슬슬 오르는 듯했다. 아까 병원에서는 37.4였다.

“체온은 좀 애매하네요. 37.5부터 미열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도 코로나 검사를 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집에서 해 보았는데...”

의사가 웃었다.

“네. 그래도요.”

잠시 뒤에 두 줄이 나온 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위험한 병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약 처방해 드릴 테니 잘 드세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연휴에도 코로나 병원은 운영을 하니 거기서 도움을 받으시면 됩니다.”

“네...”

대답을 하면서도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의사가 한 번 더 말했다.

“위험한 병 아닙니다. 약 잘 드시면 돼요. 혹시 새벽에 약 기운 떨어져서 힘들면 타이레놀 사가셔서 두 알을 드세요.”

친절한 설명에도 나는 표정을 고치지 못하였고 설명도 에 잘 안 들렸다. 내가 위험하게 될까 봐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할 말이 없다. 어쩌면 좋을까...’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와서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다행히 안방에는 화장실이 있어서 거실로 나가지 않아도 생활이 되었다. 조금 있다가 남편이 방으로 점심을 가져다주어서 조금 먹었다. 그리고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열이 오르는지 마치 꿈 속인 듯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데 잠이 들만하면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엄마, 아들, 딸, 형님, 막내 동서, 올케, 그리고 위문 톡들. 전화나 톡이나 간에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상이었는데 그것도 대처하기가 힘에 겨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처음 하루 이틀이 어려운 거였다. 이틀 차에는 정신을 잃을 듯이 배가 아파서 심히 고생을 했다. 나 혼자 안방 화장실에 있었는데 남편을 부를 힘이 없었다. 예전에도 한 번 정신이 까무룩 할 정도의 극심한 복통으로 한밤중에 시내 병원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아픈 것 보다도 점점 흐려지는 의식이 겁이 났다. 이러다가 혼자서 몰래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혼자 끙끙거리다가 간신히 잦아들어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까 보건소에서 현황조사차 전화가 왔을 때 ‘문자를 보내드렸으니 읽어보시라'던 말이 생각나서 문자를 읽어보았다. 위급 시에는 119에 전화를 하라고 쓰여 있었다.


죽다가 겨우 살았는데 나은 줄 알았던 배가 다시 살살 아파왔다. 아까의 공포가 다시 꿈틀거렸다. 그러다가 나 혼자 정신을 잃으면 안 될 것 같아 남편이 발견할 수 있도록 거실 화장실을 가기로 했다. 남편은 물소리를 내며 덜거덕 거리는 것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쓴 그릇도 있어 설거지도 따로 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내가 거실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것은 알아챈 듯했다. 그래도 내 상황은 모를 것이다. 나는 또다시 그 극심한 복통에 쩔쩔매고 있었는데 남편은 설거지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상황을 알리고자 남편을 불렀다. 목이 쉬어 소리도 잘 안 나오는 데다가 힘이 없어서 부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간신히 남편에게 들릴 만큼 소리를 냈는데 남편의 반응은 설거지를 하면서 ‘왜?’하고 묻는 것이었다. 얼른 와서 내가 어떤 상황인지 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하던 일을 마저 끝내려고만 하는 듯했다. 한동안 혼자서 견디다가 다시 한번 불렀다. 그런데도 반응은 아까와 같았다. 그다음에도 또 그랬다. 나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남편이 왔다. 나는 얼른 내 휴대폰에 있는 보건소 문자를 읽어보고 매뉴얼대로 해 달라고 했다. 의식 소실 또는 저하 시 119를 부르라고 쓰여 있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남편이 읽어보더니 119에 전화를 했다. 환자 상태를 묻는 것 같은데 남편이 대답을 잘할 수 없어서 ‘스피커 폰'으로 전환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119의 응답 내용은 ‘자차로 이동 가능하실까요?’하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매뉴얼과는 다른 답이어서 나는 당황했다. 남편이 ‘제 차로 가면 되긴 해요.’하고 대답을 했다. 그래도 되는 거였으면 119에 전화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병원을 알아보았다. 알고 있는 코로나 지정병원은 두 곳인데 한 곳은 병상이 없어서 와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두 시간 후에는 한 자리가 나니 그때는 받아줄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곳은 응급실로 들어가는 것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통화를 통해서 알아낸 것은 병원 치료라는 것이 수액을 맞는 거라는 것이었다. 나는 또 코로나라서 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있나 했었다. 남편이 전화를 끊고 나서 어디로 갈 건지 내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관두라고 했다. 예전의 그 복통 당시의 데자뷔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아팠지만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복통은 가라앉았고 병원에 가서는 검사한다고 피를 뽑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 수액을 꽂아 주었었다. 차가운 수액이 흘러 들어가는 동안 추위에 떨면서 두 시간을 기다렸건만 혈액검사 결과로는 이상소견이 없다고, 신경성 복통인 것 같다고 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복통은 아까처럼 다시 잦아들었다. 그래도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보건소는 융통성 없는 안내를 했고, 119는 무성의했고, 병원은 여력이 없다고 했다. 제일 배신감이 드는 것은 남편이었다. 세 번을 부르는 동안 와 보지도 않고 ‘왜?’만 하다니 용서가 안 된다. 끼니때마다 밥 따로 챙겨주고 수발 들어준 것은 고마웠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남편을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은 방문을 어놓으라고 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가 알려고 그러는 것이다. 아까는 불러도 오지도 않았으면서 뭘, 나는 화가 난 상태를 좀 더 끌고 싶었다.


쉬면서 생각을 해보니 코로나에서 복통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본 것 같았다. 그것도 아랫배가 아픈 것이 코로나랑 상관이 있는 건가? 아마도 내가 모르더라도 그런 증상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는 전에 겪어본 어떤 복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 수술 후 약을 복용할 때마다 한 이틀 지나고 나서는 배가 쌀쌀 아프면서 복통이 왔었다. 의사에게 그렇다고 말을 하면 약 처방을 바꾸어 주었었다. 항생제의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 정도가 이렇게 극심하지는 않았었다. 내가 겪은 복통 중 의식이 흐릿해질 정도의 복통은 예의 응급실에 갔을 때의 그 복통과 이 번뿐이었다. 내가 갔던 이비인후과는  휴무에 들어가서 전화를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고, 약국에 전화를 걸어보면 되겠다. 상황설명을 하고는 여러 개의 알약 중 어떤 것이 항생제인지 물었더니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그것을 빼고 먹었다. 그래도 처방된 약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지 몰라서 다음부터는 아침저녁은 그대로 먹고 점심에는 뺐다. 어차피 몸도 차차 회복되고 있어서 약기운이 떨어져도 증상(발열, 기침, 가래)이 심하지 않았고, 의사가 처방전을 써 줄 때 약은 끝까지 다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기관지가 답답한 증상이 회복되는 대로 복용을 중단하려고 생각하던 중이기도 했다.


오늘 점심을 먹고 나서는 잠깐 쉰다는 것이 깊은 낮잠을 잤다. 잠결에 무슨 진동음을 들었는데 그게 뭔지 알아내려고 비몽사몽간에 애를 썼다. 잠을 깨고 보니 땀이 흠뻑 나 있었다.

‘아, 지금 몇 시지?’

학교 갈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깜짝 놀라서 남편을 불렀다. 내가 늦잠을 잤다면 분명 남편이 깨웠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일 거다. 남편이 뭐하나 거실로 나가보았더니 남편은 엉뚱하게 거실 앞 데크에서 개들 벼룩을 잡아주고 있었다. 한가하게 그럴 시간이 아닐 텐데 어떻게 된 것인가 생각해보니 아침이 아니고 오후였다. 그리고 오늘은 추석 연휴 중이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격리로 인하여 출근이 중지된 상황이었다. 상황 파악이 되자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이처럼 곤한 낮잠을 잤던 것이 언제였던가, 어렸을 적 열에 달떠서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다가 이처럼 곤한 잠을 잔 적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침이 환히 밝았는데 엄마가 없었다. ‘아, 학교~!!’ 늦으면 안 되는데 엄마가 없다. 온 힘을 다해 엄마불러도 엄마가 안 와서 소리쳐 울면서 엄마를 찾으러 무작정 달려 나갔다. ‘엄마~! 엄마~!’ 동네방네 소리를 쳤건만 엄마를 찾지 못하고 절망에 울면서 다시 집으로 뛰어왔다. 그런데 집 앞에 엄마가 계셨다. 엄마는 집에 계셨었고 대답을 하셨는데 내가 얼마나 큰소리로 울었던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거였다. 게다가 내가 엄마가 집에 없다고 생각하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는 바람에 나를 찾으러 나오신 거였다. 그리고 지금은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고 내가 낮잠을 잔 거라고 일러주셨었다. 그때 엄마가 보라고 가리켰던 노을빛과 풍경이 지금도 사진처럼 뇌리에 남아있다. 동네 성당 뒤로 하늘의 구름이 붉게 물들었고 그 사이에 저녁해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그쪽이 서쪽이라는 것을 그 이후에야 확실히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파서 조퇴까지 하고 온 애가 갑자기 목청이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는 데다가 놀라서 골목으로 뛰어나가니 엄마는 내가 어떻게 된 줄 아셨을 것이다. 그 일로 나를 놀린 사람은 없었는데 나는 어쩐지 앞 뒤 옆집 아줌마들이 그 일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뒤로 한 동안 부끄러웠었다.


“나 한참 잤어요? 땀 흠뻑 내고 잤네~!”

“좀 잤어. 잘했네.”

어렸을 때 열감기를 앓았을 때 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듯 까마득하고,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그 저릿저릿했던 느낌, 이불이 무거워서 차 내려고 힘겨운 씨름을 했던 기억, 그리고 땀 흘리고 자고 났을 때의 그 개운함과 어른들께 들었던 말씀, ‘땀 푹 내고 잔 걸 보니 이제 낫겠구나.’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무리 지어 기억의 표면에 떠 올랐다.


잠결에 들은 진동음은 무엇이었을까? 전화기는 아닌 것이 진동 간격이 훨씬 짧고 부산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전화기와 연동된 밴드에서 울린 것이었다. 풀어서 상자 안에 두었더니 진동이 확장되어 그렇게 맹렬하게 들린 것이었다. 전화기를 찾아서 보니 엄마의 전화였다. 아들이 처가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할머니를 뵈러 간 것이다. 호수와 세하가 차에서 잠이 깊이 들어서 같이 하려던 식사를 취소하고 엄마가 음식을 이것저것 싸서 보냈다고 하셨다. 어려서 키워준 외손자가 명절이라고 따로 찾아뵌 것이 흐뭇한 눈치셨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 산소에 갔다는 소식도 전해주셨다.

“느이 내외가 못 와서 그게 하나 아쉽다.”

그래도 손자가 장가 들어서 처랑 아이들을 데리고 처갓댁도 가고 할머니도 찾아뵙고 하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가.


코로나 확진을 받고 온 날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때요?”

“나도 안 좋아. 목이 잠기는 것 같아.”

“어? 그거 전형적인 증상인데? 당신도 가서 검사해보세요.”

남편은 음성이 나왔다. 그래서 감기약 처방을 받았는데 이삼일 후에 코로나 양성이 나올 수 있으니 다시 오라고 했다고 한다. 삼일 치 약을 다 먹었는데 별 효과가 없어서 다시 병원에 갔다. 결과는 양성이었다. 그래도 이미 감기약을 먹고 있어서 그런지 나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같이 시작했으면 격리도 같이 끝날 것을 해제가 삼일이나 늦어지게 되었다. 그러면 다음 토요일에 아들 네 가족이 놀러 오지 못하겠다. 다행히 일요일 하루는 남기게 되었으니 쓸쓸한 추석을 보낸 보상을 그날 실컷 도모해야겠다.

 

남편은 오늘부터 안방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같이 걸렸기 때문에 따로 조심할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남편이 누워서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는 것 같은데 영 시끄럽다. 그러더니 좀 있다가 남편이 다시 일어났다. 아무래도 기침이 나서 안 되겠다고 거실로 나가야겠다고 한다. 내가 잘 때 방해될 것도 그렇고, 겨우 나아가는 판에 다시 악화될까 해서 그렇다고 한다. 사실 나는 잠이 안 오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남편이 잔다고 하면 안방에 불을 꺼주고서 패드를 들고 거실로 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이 증상이 심해지더라도 내가 수발을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둘이서 동시에 아파서 정신 못 차리면 곤란할 뻔했다. 내가 아파보니 혼자서 생활이 안되었다. 그런데 남편은 증상이 약하게 지나갈 모양이다. 그리고 어차피 둘 다 걸렸기 때문에 남편 밥상을 따로 차려서 가져다주는 것도 안 해도 된다. 이래서 인생이 불공평한 거다. 나는 내일도 아픈 흉내를 낼 생각이다. 그런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아픈데 안 아픈 척도 못하지만, 안 아픈데 아픈 척하는 것도 아마 잘 못할 거다. 그중에서도 입이 제일 문제다. 이제 기운 좀 차리고 보니 입이 제일 먼저 살아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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