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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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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Nov 05. 2022

토리를 생각함


토리가 죽었다.


*     *     *


지난 주말에 아들네 집에 갔었다. 손녀  세하의 어린이집 전시회에 갔다가 바로 옆의 삼계탕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남편이 내게 먹고 남은 삼계탕을 포장해가자 했다. 토리가 며칠째 밥을 안 먹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로는 아무리 맛있는 것을 주어도 두고 보기만 하고 먹지를 않는단다. 그래도 다른 개들이 먹지 못하게 으르렁 하기는 했는데 정작 자신은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 삼계탕은 먹을지도 모르니까 가져다 주려는 것이다.


다음 날 내가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토리 삼계탕 먹었어요?"

"아니. 입도 안 댔어."

"그래요? 걱정이네..."

아무래도 얼마 못 갈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마당에서 토리가 보이질 않았다.

"토리 어디 있어요?"

"원래 자던 곳에 묶어 놓았어."

"왜요?"

나는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다른 개들은 다 묶어도 토리는 묶지 않는 개였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청이가 그런 개였는데 청이가 죽은 이후로는 토리가 그 지위를 물려받았었다.

"자꾸만 어디 숨어있으려고 해서 나중에 찾기 어려울까봐."

토리는 숨어서 눈감을 곳을 찾고 있었고 남편은 그런 토리의 위치를 확보해 두려고 하는 것이다.


*       *       *


그전에 청이가 마당의 주인이던 시절 토리를 안방 옆 데크 계단 참에 묶어 둠으로써 그 둘의 분쟁을 잠재웠었다. 토리는 거기서 묶여있으면서도 순순히 잘 지냈다. 다만 청이를 피해 다녀야했던 그 남루한 자유를 빼앗기는 대신 청이가 자신을 업수이 여기지 못하게 했다. 예를 들어 청이가 토리 앞을 함부로 지나다닐 수 없었다. 묶여있기 전에는 토리가 청이를 피해다녔지만 묶여있는 후로는 청이가 조심을 해야했. 그동안 토리가 청이만 못해서 숙여지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토리가 어떻게 생활을 받아들였을까 싶다. 그만큼 토리는 현실적 상황 기존의 질서순응하는 개였다.

"그래도 웅이는 다 죽어 가다가도 풀어놓으니 여태껏 살잖아요?"

"아니야. 토리는 소용없을 것 같아."


*      *      *


그제 아침에 남편이 마당에서 들어오면서 말했다

"토리, 죽었어."

아침에 가보니 죽어있었다고 한다. 조만간 그런 일이 있을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쉽게 죽을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토리가 음식을 안 먹고 기운 없어하는 것이 강아지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었 때문이다.


지난번에 남편이 내게 말했었다.

"올해는 토리가 강아지 낳을 거야."

"그래요? 정말?"

토리는 잘 생기고 영민한 진돗개여서 우리는 토리의 새끼를 기대했는데 어쩐 일인지 새끼를 잘 낳지 않았다. 딱 한번 강아지를 낳았는데 그중 한마리가 먼저 죽은 백이였다. 아마도 청이가 있을 동안 토리가 강아지를 가질 기회를 얻기 어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청이가 죽었을 때는 토리도 더 이상 젊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랑이의 새끼를 낳을 거라고 했다.

"내가 봤어."    


*       *       *


청이가 토리를 낳았고 토리가 백이를 낳았으니 그 셋은 피를 이어받은 혈족이었다. 그러나 개들의 세상에서는 다 자란 이후에는 그런 것들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백이가 아기였을 때는 외할머니인 청이가 잘 보살펴 주었으나 성견이 되자 토리와 마찬가지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도 웅이를 둔 서열정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토리는 청이를 데리고 나가 따로 신랑을 구해서 얻었기 때문에 웅이랑은 혈연이 없었다. 만약 웅이와 토리가 새끼를 낳는다면 잘 생기고 똑똑한 강아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백이는 청이한테 혼나서 강아지를 낳기는 커녕 마당에서 마음 놓고 돌아다니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엄마인 토리는 백이를 죽을 때까지 같이 자고 같이 먹게 해 주었다. 지금 토리가 있는 집이 토리가 딸 백이와 함께 잠자던 곳이다.


청이가 죽은 후 토리가 마당의 주인이 되었고 다른 개들은 그 질서 아래 살았다. 청이가 죽은 후 한 동안, 아직 순이와 랑이가 들어오기 전에, 마당에는 웅이와 토리만 있었다. 그때 웅이는 서편 울타리 쪽에 묶여있었는데 나이가 먹어 건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웅이에게는 그때가 좋은 때였다. 하루는 남편이 아침에 달걀을 꺼내러 갔는데 그중 하나가 얼어서 금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닭장 앞까지 따라온 토리에게 주었는데 토리가 먹지 않고 입에 문 채 웅이한테 갔단다. 진짜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근래에는 웅이가 토리에게 배신을 당했다. 새로 들어온 랑이 때문이다. 강아지 때 왔는데 지금은 한창 혈기왕성한 청년이 되었고 감히 토리를 따라다니면서 웅이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웅이가 마당에서 보이지 않았다. 남편에게 물어보았더니 웅이를 묶어 놓았다고 했다. 내가 궁금해서 말했다.

"웅이를 왜 묶어요?"

"랑이를 하도 잡아서."

웅이가 얼마나 랑이에게 심하게 하는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웅이가 랑이를 이겨요?"

"기운으로는 못 이기는데 성질로 이기는 거야."

지난번에도 웅이의 콧잔등을 물어서 피가 났다고 했다. 토리가 랑이랑 사랑을 나눈 이후에는 웅이가 랑이를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더 서글픈 것은 웅이가 랑이를 혼내 주려다가 토리한테 제지를 당한 것이었다. 토리가 나서서 랑이 편을 들었던  것이다. 웅이로서는 랑이에 대한 공격성이 더 높아질 일이었다. 그래서 마당의 평화를 위해서 웅이를 묶어 놓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천방지축 랑이를 묶지 왜..."


웅이의 분노와는 별개로 우리는 오랜만에 토리의 강아지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토리가 갑자기 시름시름하더니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내다가 결국 죽었다.


"아니, 토리가 그렇게 갑자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문제없었고 적어도 웅이보다는 더 살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막상 토리가 죽었는데도 토리가 마지막에 사랑했던 랑이는 아무 타격을 받지 않았다. 전에 사랑했던 웅이도 마찬가지다. 토리가 죽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웅이는 계속 짖어대던 것을 멈추었다. 눈뜨고 못 봐줄 꼴이 보이지 않아서 그러는지 뭔가 허전해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랑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요즘 순이 뒤꽁무니를 쫒아다니느라 바쁘다. 순이는 체구가 자그마한 개다. 까미는 순이 딸인데 몸집이 제 엄마만큼 하다. 랑이는 진돗개라고 해서 얻어왔는데 모습이 아무래도 봐도 좀 다르게 생겼다. 우리는 계속 진돗개를 이어가고 싶은데 토리가 죽어서 그 계보를 이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한편 마당에는 토리가 있을 때는 가능하지 않았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뒤꼍에 숨어 살던 순이가 드디어 세상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마당에 토리가 없어서 영향을 받는 다른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다. 마당 출입이 여간 번거로워 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올이 나가기 쉬운 스타킹을 신었을 때는 더 곤란하다. 나는 저만치 서서 반갑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데면데면한 토리가 더 나았는데 마당에 남은 개 세 마리는 모두 정신없이 달려드는 애들이다. 그중에서도 제 세상 만난 순이가 제일 심하다. 출근하려고 현관에서 나와 차를 타러 가는 몇 발짝도 이 개들 때문에 참 다사다난하다. 랑이를 쫒으면 까미가 달려들고, 까미를 쫒으면 순이가 설레발이다. 그래도 순이를 쫒으면 일이 좀 수월해진다. 순이가 가면 랑이가 순이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본능에 충실한 견생이지만 바로 며칠 전까지 제가 졸졸 따라디니던 토리가 죽은 게 어쩌면 저렇게 아무런 사건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런데 또 한편 생각해보면 삶과 죽음이 이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토리의 죽음은 아무런 흔적 남기지 않았고 남겨진 아픔도 없다. 먼저는 딸인 백이가 죽었고, 그다음에는 엄마 청이가 죽었고, 이제는 토리가 죽었다. 청이로부터 시작된 진돗개 삼대가 다 죽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며칠 전만 해도 강아지를 낳을 거라는 기대를 품게 했던, 없었다고 하기에는 존재감이 굳건하던 진돗개 토리가, 1도 남지 않고 0이 되었다는 게 참 이상하기만 하다.


*       *       *


토요일 낮에 우리가 멀리 나가 있을 때 아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전화를 했다.

"아빠, 토리는 어디 있어요?"

"토리 죽어서 묻었다."


*       *        *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그 아저씨 토리 강아지 얻어가긴 틀렸네."

"누구?"

"그 우체부 아저씨요."

우리집에 각종 고지서 등 우편물과 소포를 가져다주는 우제부 아저씨가 있는데 올 때마다 우리 개들을 보고 간다고 한다. 강아지를 낳으면 한 마리 주기로 했었다.

"응, 얘기했어."


*        *         *


"요새 누가 집 지키는지 알아?"

남편이 내게 물었다.

"글쎄요... 랑이인가?"

"순이야."

순이가 앞마당에 나온 이후로 누가 집밖에 오면 잘 는단다. 피끓는 청년 랑이도있고, 그런 랑이를 거칠게 잡아놓는 할아버지 진돗개 웅이도 있는데 한주먹 거리 밖에 안되는 순이가 집을 지키다니 참 그림이 우습다.

"그런데 순이 단점이 뭔지 알아?" 

집 밖에 있을 때는 콩콩 짖다가도 일단 집안에 들어온 사람은 다 환영 한다고 한다. 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 취급을 한다고. 주인을 지킬 생각은 안하고 제 귀염만 받으려고 하다니.

"에? 순이 연예인병 아닌가?"

래서 진돗개가 우수하다는 거다. 충직하고 똑똑하다. 순이는 이쁘고 귀엽고 성가시고 좀  웃긴다.


*       *        *


밤이 깊었는데 웅이가 밖에서 짖는다. 기운 없고 쉰 소리가 난다. 다시 풀어 주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무얼 쫒는 건지 찾는 건지 그치질 않는다. 저러다가 웅이도 기운 다 빠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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