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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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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Oct 04. 2022

타고난 게 다르다.

세하는 네 살이다. 우리 손녀딸이다.

도현이는 세 살이고 우리 외손자다.

세하는 일곱 살 오빠(호수, 우리 손자)가 있다. 하지만 오빠 눈치 따위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집안 분위기를 손에 고 좌지우지하는 것은 세하다. 자기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호수가 손해를 보는 게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가 있다.


호수는 만만찮은 여동생이 있다 보니 그 환경에서 사는 방법을 어느 정도 배웠다. 세하랑 싸우거나 이기려고 하는 대신 엄마에게 조정을 의뢰하는 방법을 쓴다.


호수는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이미 내린 의사 결정은 변경하지 않는다. 하루는 토요일에 호수 세하가 놀러 왔을 때 내가 나름대로 노력해서 점심을 차려 주었다. 그런데 호수는 배가 안 고프다고 밥을 안 먹으려고 했다. 입도 짧은 데다가 오면서 간식을 먹었단다. 이럴때 호수에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인정해주고 한발 물러나는 것이다. 그래야 추후의 협상 가능성을 남겨 놓을 수 있다. 그런데 세하는 한번 먹어보고 나서 나한테 와서 살짝 말했다. 

“할머니, (해주신 음식) 맛있어요."

배가 고프지 않기는 호수나 세하나 마찬가지 였을텐데 내가 실망하는 것 같으니까 위로를 해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좀 놀랐다. 세하는 배우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이미 탑재되어 있다.


전에 도현이가 놀러 을 때의 일이다. 세하가 도현이랑 잘 놀아주었다. 호수는 동생이 있어봐서 그렇다고 하지만 세하는 뜻밖이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도현이가 또 놀러 온다고 했을 때 도현이가 자기를 좋아할 것 같다고 하면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전에 도현이가 왔을 때 제 엄마한테 말하기를 도현이를 ‘데리고 가서 키워주고 싶다.’고 했다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진짜 놀랐다. 이제 네 살밖에 안 되었는데 어디에 런 마음이 들어있었을까?


호수가 도현이를 배려해 주는 것은 자전거를 탈 때 혼자 휘리릭 가지 않고 도현이의 킥보드 속도에 맞춰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데려가서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호수는 유치원에서 놀다가 다쳐서 오면서도 선생님께 안 알리고 그냥 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먼저 번에도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서 양쪽 정강이에 나란히 멍 자국이 생겼을 때도 그렇고, 책상 모서리에 얼굴을 찧어서 아래턱에는 멍이 들었고 입 안쪽에는 피가 났을 때에도 선생님께는 말씀을 안 드렸고 혼자서 대충 감당하고는 집으로 왔다 한다. 그래서 집에서 보고 혹시 이를 다치지는 않았는지 치과에 데리고 갔다 왔다고 했다. 아마도 세하가 그런 경우를 당했으면 어린이집이 떠나가게 울었을 것이고 선생님이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자와 남자는 평등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여자와 남자는 타고난 게 다르다.’

평등은 권리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서로 다르다는 것은 고유한 특성이 있더라는 것이다. 호수와 세하가 크는 것을 보면 역할 학습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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