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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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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Nov 08. 2022

씨앗을 언제 뿌려야 하나?

아침에 남쪽 현관 앞에서 한 선생님을 만났다. 수업 시작 전에 잠깐 텃밭 상자를 보러 나온 것이다. 그 선생님 반 상자를 내게 보여주었다. 작은 잎들이 조르륵 나 있었다.

“이것 보세요. 여름 방학 끝나고 나서 씨 뿌렸던 건데 이제 겨우 요만큼 자랐어요.”

“아, 그래요?”

“지금 한창 이쁘게 났는데 이제 더 자라지는 못할 것 같아요.”

“날씨가 추워져서 그렇죠?”


그 선생님 상추는 두 포기가 났는데 이제 겨우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었다. 쑥갓도 이제 막 떡잎을 면했고 가장자리가 뾰족뾰족한 본잎이 조금 자랐다. 나도 점심시간에는 매일 화단 앞에 길게 늘어선 텃밭 상자들을 보는데 어느 상자에는 상추가 딱 먹기 좋을 만큼 자랐다. 연둣빛 색깔도 이쁘고 자줏빛 상추도 이쁘다. 그리고 가을 상추가 더 예쁜 것은 매일 보아도 매일 그 모습이다. 여름처럼 웃자라지 않는다. 아까 그 선생님 반 상추는 이제 잎이 동전만 한데 옆 상자의 저렇게 소담스러운 상추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 비밀은 어떤 상태의 것을 심었느냐에 숨어있다. 씨를 심었는지 모종을 심었는지가 다른 것이다. 모종을 사다 심은 것은 지금 한창 자라 있고, 씨를 뿌린 것은 이제 겨우 크기 시작했다.


모종은 언제부터 모종이었을까? 모종도 처음에는 씨앗이었다. 그런데 시장에 나오기 전에 먼저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즉 시간의 차이가 있다. 학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아이는 씨앗인 상태로 학교에 오고 어떤 아이는 모종의 상태로 학교에 온다. 미리 들어간 시간이 있고 없고 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1학년에서 어느 만큼의 성취를 해야 한다는 교육과정의 목표가 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이미 넘치고 어떤 아이는 이제 시작을 한다. 넘치는 아이에게는 수업이 흥미롭지가 않고, 부족한 아이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1학년 선생님들이 이 차이를 어떻게 메꾸어 나갈지 이미 처음부터 어려운 과제이다.


지난번에 1학년 선생님들과 교육과정 협의를 할 때 1학년을 해보니 비로소 1학년 담임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학년과는 달리 이제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들이어서 학력 격차에 따른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1학년 1학기 때 아이들에게 글공부 부담 주지 말라고 받아쓰기도 하면 안 된다, 알림장 쓰는 것도 안 된다 하면서 정작 수학 교과서는 이미 읽고 쓰는 능력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어서 미리 한글을 알고 온 아이들은 따라갈 수 있지만 학교에서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은 해 보기도 전에 이미 뒤처지게 된다면서 이런 불합리가 어디 있냐고 성토를 했다. 2학기  쓰기를 시작하지만 한 학기 가지고는 한글 미해득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서 2학년에 올려 보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문제점들은 단위학교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라 교육부 차원에서 다루어야할 논제 같았는데 어쨌든 선생님들은 각자 자기 학급의 미해득 학생 지도에 최선을 다하고 학교에서는 다음 학년도부터는 방과 후에 1학년 아이들을 위한 한글 공부방을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나도 요 근래에 개개인의 학습 성취에 대해서 경험을 한 것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인근 대학교의 한국어학원에 있는 외국 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한다. 내가 맡은 학생들은 대한민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각국에서 초청된 젊은이들이다. 어학코스 지원은 1년인데 그 안에 대학 입학 자격 최소 조건인 토픽(한국어 능력시험) 3급을 따야만 한다. 그래야 그 뒤의 학업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업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그중 세 명을 별도로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게 어학원에서 내게 배정을 한 것이다. 순수한 봉사활동인데 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어서 좋고 학생들은 무료 수업을 받을 수 있어서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그 세 중 한 명은 콜럼비아 학생인데 수업을 잘 따라오고 열심히 했다. 또 한 명은 카메룬 학생인데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업에는 빠지지 않았다. 또 하나는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인데 수준은 중간이고 수업에 자주 빠졌다. 콜롬비아 학생은 어학원 레벨 테스트에서 너끈히 진급을 했다. 러시아 고려인 학생은 낙제를 면한 수준에서 진급을 했다. 그리고 카메룬 학생은 낙제를 했다. 그래서 한국어 초급 1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낙제를 한 캄보디아 학생이 수업을 원해서 그 둘이 같이 한국어 초급 1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카메룬 학생을 가르치면서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전에 가르칠 때는 공부를 잘못했었는데 두 번째 배울 때는 뭐든 술술 잘했다. 틀리는 것도 거의 없고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것도 없었다. 같이 낙제를 한 캄보디아 학생도 잘했다. 먼저 진급한 콜럼비아 학생만큼 잘하고 있었다. 결국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거기에 들어간 시간과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셋 중 공부를 잘했던 콜럼비아 학생은 한국에 오기 전에 약간의 공부가 있었든지, 아니면 같이 시작했지만 개인적으로 공부를 더 했든지 했을 것이다. 결국은 학습량이 관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공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손흥민이 축구를 잘하는 데에도,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잘 타는 데에도, 아이유가 노래를 잘하고 지민이가 춤을 잘 추는 데에도 다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학교의 고민이 있다. 개인적인 갭을 어떻게 채우면서 늦게 시작한 아이들도 같이 성장하게 할 것인가.


“이제 더 자라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 선생님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이 아니고 상추와 쑥갓이어서 다행이다. 아이들을 두고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옆 상자의 상추처럼 크게 자라지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이제 방학이 달포쯤 남았다. 선생님들은 벌써 D-40일을 설정했다. 앞으로 방학 때까지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날이 꼭 40일 남았다고 한다. 교육과정 마무리와 아이들 평가결과 정리, 방학 준비 등 넘어야 할 산이 녹록지 않다. 교장실에서 건너다보는 내가 그럴진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마음은 더 바쁘고 복잡할 것이다.


밖에서 아이들 소리가 다.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과 아직 학교에서 공부가 더 남은 아이들, 이리저리 오르고 내리는 소리. 아이들 말소리가 명랑하다. 텃밭 상자의 쑥갓도 상추도 아직은 잘 자라고 있다. 아이들이 나와서 물을 주고 선생님이 나와서 얼마나 컸나 들여다볼 것이다. 설령 내일 된서리가 와서 더는 푸르지 못하게 되더라도 오늘의 햇빛은 충분히 따스하고 밝고 희망적이다. 다만 내년에도 여름 방학 지내고 와서 씨를 뿌리려는 이가 있으면 모종을 사다 심으라고 해야 하겠다. 아니면 방학 전에 미리 씨를 뿌려 두거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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