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Sep 19. 2024
얼마 전까지 근무하던 학교에서의 일이다. 학교 바로 옆에 대형마트를 짓고 있는데 4차선 도로 옆의 산을 깎아 건축 부지를 만드느라 토목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 길은 우리 학교 아이들의 등교 길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육교를 건너 학교로 들어와서 도로상 겹칠 일은 별로 없었지만 학교에서는 늘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일단 덩치 큰 트럭들이 학교 바로 옆을 계속 드나드는 것이 제일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어느 날 안전대책 회의를 열었는데 공사 측에서 되도록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에 덤프트럭의 진출입을 피하고 부득이한 경우 학교 앞 횡단보도에 사람을 내보내서 아이들을 보호하도록 협의가 되었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아이들 등교를 살피러 나가보면 공사하는 측에서 내보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든 아저씨였는데 가끔은 사람이 바뀌기도 했다. 그 아저씨들에게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면 대부분은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이들 보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이 교통 규칙도 잘 지키더라고 했다. 아이들을 건네주는 것은 우리 학부모회에서 맡아하고 그이들이 하는 것은 트럭들이 행여나 아이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들도 트럭들도 잘하고 있어서 크게 위험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이들은 나이 든 어른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아이들을 볼 때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지킴이 분들도, 청소 실무원 분들도, 시니어클럽의 도우미 분들도 모두 그렇다. 특히 이분들의 특징은 아이들에게 엄격하지 않고 관대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나가 보니 공사 측에서 내 보낸 사람이 젊은 청년이었다. 나가서 인사를 하니 별 반응이 없다.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까딱했고 곧 얼굴을 돌렸다. 제 위치에 서 있기는 했는데 무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관심 있게 보는 것도 아니고 트럭들을 별다르게 살피지도 않고 자주 휴대폰을 보느라 고개를 떨구었다. 그 청년은 주로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나왔다. 아이들이 등교할 때 한 시간, 하교할 때 한 시간 아이들의 안전을 돌볼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 학교와 약속된 사항이었다. 등교시간과 달리 하교시간은 학년마다 또는 방과후 활동 등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건너는 일도 별로 없었다. 아이들도 신호등 따라 잘 건너고 트럭들도 자기 경로를 밟아 잘 다니고 있어서 그 청년의 그런 소극적인 태도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혼자 거리에 서 있는 것은 단지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는 것인 듯 아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엄연히 돈을 받는 일이기 때문에 내놓고 휴대폰을 보기에도 적절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과 인사를 하려 해도 눈이 잘 마주치지 않던 이유가 있었다. 귀에 작은 이어폰이 꽂혀 있었던 것이다. 무슨 강의를 듣는 건지 음악을 듣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인사를 하니 마주 고개를 까딱하는 정도의 반응은 보여주었다.
인사를 하면서도 나는 ‘저 청년 말고 먼저 그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나오면 좋겠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아예 작은 의자를 하나 가지고 와서 앉아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열심히 아이들을 보고 있다고 하겠다. 저 청년을 이십대라고 보고 먼저 만나던 아저씨들을 오십대라고 보았을 때 삼십 년 정도의 시차가 있다. 저 청년도 삼십 년 후쯤이면 표정이 한결 부드럽고 넉넉한 아저씨가 될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을 보면 미소가 떠오르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안전을 설명 없이 이해하고, 주변에 적절한 반응을 할 줄 아는 그런 아저씨(어쩌면 할아버지)가 되는데 삼십 년이면 될지 모르겠다. 나이는 공짜로 먹는 것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먹은 나이는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 나잇값이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