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양선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monfresh Nov 30. 2022

첫눈 소묘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추웠다. 밖에는 얼음이 꽁꽁 얼었다고 했다. 춥고 얼음이 꽁꽁 얼었다고 하는데 나는 뭔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이제 비로소 날씨가 달력과 일치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냉철하고 엄격한 큰오빠가 마침내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제야 계절이 제대로 돌아가겠다.


나는 느슨했던 마음을 한껏 여미고 옷을 최대한 따뜻한 것으로 골라 입었다. 바깥에서 한 삼십 분 서 있어도 추위에 떨지 않을 옷으로.


출근을 해서 교문 앞에 나가니 아침 음악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송부 아이들이 아침마다 노래를 틀어주는데 오늘은 눈과 겨울 관련 동요를 내보내고 있었다. 노래가 있어 눈 오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워졌다. 아이들은 옅게 흩뿌리는 눈을 반가워하며 내게 눈이 오는 게 보이냐고 물었다. 진짜로 보이는지 묻는다기보다는 눈이 오는 것이 반갑다는 의미이다. ‘물론 보이지!’ 내가 대답을 했다.


한 아이가 내게 장미 봉오리를 내밀었다.

“얼어 있어서 한번 따 봤어요.”

“그래? 아깝네. 이제 장미는 피어나지 못할 거야.”

며칠 전만 해도 학교 울타리에 아직까지 피어있는 장미가 있어서 내가 사진을 찍어 두었었다. 학교 화단에는 계절잘못 알고 피어난 영산홍도 몇 송이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송악에서 도고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산벚나무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것도 보았었다. 갑자기 춥고 눈이 오니 그 나무는 어떻게 될까? 서서히 추워지면 괜찮을 텐데 따뜻한 날씨 끝에 갑자기 추워지니 나무들이 무사할까 걱정이 되었다.


초등학교 아이들 등교를 마치고 유치원 쪽으로 가면서 보니 텃밭 상자의 쑥갓이 얼어있었다. 아이들이 늦게 심어서 지금 작은 모종이 되었는데 이젠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이다. 보도에 보니 아이들이 던져놓은 얼음조각이 있었다. 행여나 누가 밟을까 하여 옆으로 치워 놓았다. 미끄러져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을 들러서 돌아오다 보니 급식실 가는 쪽에 얼음이 잔뜩 흩뿌려 있었다. 아이들이 벼를 기르던 통에 얼음이 언 것을 어느새 저렇게 흩뿌려 놓은 것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저런 책임지지 않을 장난들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어떤 아이들은 장난으로 그랬지만 어떤 아이인가는 큰 피해를 입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행정실에 가서 얼음을 치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눈은 곧 그쳤다. 워낙 얇은 눈이어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아이와 어른을 구분 짓는데 눈도 하나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눈 온다고 좋아하면 아이, 눈 와서 걱정이면 어른이란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른의 걱정이 하나 있는데 잊고 있었다. 자동차 타이어를 아직 갈지 못한 것이다. 얼른 막내 동서한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우리 막내 시동생네가  타이어 가게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 어른의 걱정을 해결하고 나서 아이의 마음으로 눈 오는 날을 기쁘게 맞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볼륨을 높여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