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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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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Dec 23. 2022

방학을 기다림

대설 주의보가 내렸다. 그런데 눈은 그리 크게 내리지 않았다. 정작 어려웠던 것은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와 꽁꽁 얼어붙은 길바닥이었다.


출근해서 보니 눈바람이 휘이잉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행정실 직원들과 몇몇 선생님이 눈을 치우고 있었다. 교문에 나갔더니 바닥에 울퉁불퉁한 빙판이 생겨 있었다. 어제 치운 눈이 낮 동안 약간 녹았고 밤사이 얼음판으로 변했는데 그 위에 새 눈이 살짝 덮여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미끄러질까 봐 그 경계에 서서 눈과 얼음이 없는 쪽으로 가라고 유도를 했다.

“아니, 거기 아니고, 이쪽으로들 가라~!”

어떤 여자아이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교장선생님, 추운데 왜 나오셨어요. 들어가세요~!”

“그래. 고마워. 추운데 어여 들어가~!”

내가 사실 이런 아이들 때문에 아침마다 나가는 거다. 교장 선생님 만나도 인사도 할 줄 모르는 아이도 있기는 하지만 또 어떤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 오히려 나를 걱정해 준다.


어떤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막 뛰어다닌다. 그것도 꼭 빙판길 쪽으로 가면서 그런다.

“천천히, 천천히! 이쪽으로 가자.”

활동적인 아이들한테 ‘천천히’처럼 답답한 말도 없다. 애들한테 일렀던 수많은 말 중에 소용이 없는 대표적인 말들이 ‘천천히’, ‘조용히’ 이런 말들이다.


한 아이가 오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라고 했다. 눈 집게를 들고서 받으라고 하기에 나는 눈 집게를 주는 줄 알았다. 손을 내밀었더니 집게를 열어서 작은 눈 공룡을 손에 떨어뜨려 주었다. 공룡은 꽤 귀여웠다. 다른 아이들이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주고 한쪽 옆에 놓아두었다.


점심시간에 보니 남자아이들 서너 명이 운동장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줄넘기 줄이 들려 있었다. 이런 날 어디에서 줄넘기를 했을까. 눈이 쌓였거나 바닥에 얼음이 있거나, 바깥 사정이 녹녹지 않을 텐데.

“이런 날 밖에서 줄넘기를 한다고?”

“아니요, 이제 들어가는 중이에요.”

그중에 한 명은 넘어진 것 같다. 손을 맞잡고 있는데 한쪽 손이 빨갛다.

다쳤니? 보건실에 한 번 가봐라.”

“아니요. 다치진 않았어요.”

이런 날 어떻게 나가서 줄넘기를 할 생각을 할까? 미끄러져 넘어진다는 생각은 안 했나? 뻔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을 어른인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안전 문제에는 아이들과 의견이 종종 다르다.


아이들이 하교할 무렵 다시 한번 교문에 나가 보았다. 아이들은 찬 바람 속에 집으로 가고, 작은 공룡도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오늘이 금요일 이어서 천만다행이다. 내일과 모레는 아이들이 학교를 오지 않을 테니 등하교 걱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얼른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이 와도 얼음이 얼어도 바람이 몰아쳐도 걱정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제 꼭 일주일 남았다. 아이들은 저희들만 방학을 기다리는 줄 알겠지만 교장 선생님도 방학을 기다린다. 방학식 하는 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 말을 얼른 써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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