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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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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Nov 14. 2022

내일부터 잘하기

점심시간의 일이다.

급식실에서 평소와 같이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1학년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물었다.

“교장 선생님은 김치를 안 먹어요?”

“응? 김치 잘 먹지~!”

왜 묻는지 몰랐는데 곧 알게 되었다. 잔반 버리는 것을 본 것이다. 남은 음식 중에 김치가 있었는데 내가 김치를 안 먹어서 버리는 줄로 알았나 보다.


나는 속으로 ‘이크’ 했다. 점심시간 나의 가장 큰 고민이 음식을 너무 많이 주는 것이다. 배식대에 서 있으면 조리원분들이 식판에 음식을 그득히 담아주신다. 나는 맨날 말한다. ‘조금만 주세요~!’ 그런데 그게 참 그렇다. 정말 귀염 못 받을 소리이기 때문이다. 고맙다고 받아서 싹 먹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맨날 교장이 식판 들고 서서 이건 패스(대사증후군 때문에), 그건 쪼끔 하고 있으니 생기던 정도 떨어질 판이다. 그래서 또 주는 대로 순순히 받으면 버리는 게 반이다. 그렇다고 용량을 초과해서 다 먹을 수도 없고 참 고민이다. 남기는 것도 양심상 고민인데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본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남기지 고 잘 먹으라고 하면서 교장선생님이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것이 말이 되나.


나는 지난해부터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면서 혈당을 체크하고 있다. 아직 병적인 단계는 아니고 단계여서 관리를 잘하면 된다고 한다. 관리의 가장 큰 부분은 식사다. 빵, 떡, 면, 단 과일을 되도록 삼가고 잡곡밥을 먹으라고 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탄수화물 양에 신경을 쓰고 보니 학교 급식 식단이 좀 문제가 되었다. 그중 가장 이상한 것은 꼭 찬 중에 탄수화물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떡볶이, 볶음 우동, 잡채 등이 그렇다. 어느 날은 국에 탄수화물이 들어갈 때도 있다. 떡국, 수제비 국 등이다. 또 어떤 때는 후식이 탄수화물이다. 회오리 감자, 떡꼬치, 조각 케이크, 찐 옥수수 등등.


영양 균형상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식단이 결재 올라왔을 때 영양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은 탄수화물 양을 맞추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란다.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어른보다 탄수화물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뇌에서는 탄수화물만을 에너지원으로 쓰기 때문에 그렇단다.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난 또 아이들 입맛 맞추려고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지난번에는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육 학년 한 아이가 나를 쫓아왔다.

“교장 선생님, 건의 사항이 있어요.”

“어, 뭔데?”

“급식 메뉴가 너무 시시해요. 마라탕 이런 것 좀 해 주시면 안 돼요?”

생각해 보자. 음~ 안될 것 같은데?”

“아~ 왜요!”

우리 급식실에서는 볶음밥을 해도 세 가지 버전을 한다. 저학년은 간장 베이스로 순한 맛, 3,4학년용 고추장 중간 맛, 5.6 학년은 매운 맛이다. 그래서  매운맛에 먹는 마라탕(사실 나는 매운 음식이라기에 아직 먹어보지도 않았다.)은 좀 곤란하다. 아마 한다고 하더라도 기대했던 맛 아닌 슴슴한 맛이 될 것이다.

“글쎄, 왜 안 될까? 너도 생각해 보면 알 것 같은데?”


사실 학교에서는 급식도 중요한 교육이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 음식을 대하는 태도, 식사할 때의 매너, 편식 지도, 그러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최대한의 궁리를 한다. 사실 나는 학교 국을 잘 안 먹는다. 입맛에 안 맞는다. 이유는 싱겁기 때문이다. 학교 국은 염도 0.6에 맞춰서 조리된다. 그런 것도 다 기준이 있다. 지난번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었다. 국물 간이 딱 좋았다. 메뉴 한쪽 옆에 국물의 염도가 게시되어 있었다. 0.73, 그러니 첫입에 맛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들도 집에서는 학교 음식처럼 싱겁게 먹지는 않을 성싶다. 염도뿐 아니라 집집마다 조리법도 다양하게 다를 것이다. 급식을 먹는 인원수가 학생만 해도 천 명이 넘는데 학교 점심이 누구에게나 다 맛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균형 잡힌 음식은 되어야 한다. 여기에 학교 급식의 한계와 무게가 있다.


“어떤 학교는 랍스터도 나온다는데...”

“그래? 정말?”

“네. 엄청 잘 나온대요.”

“그러면 어떡하지? 아이들이 우리 학교 급식은 좋아하지 않겠네?”

“아니 뭐, 그래도 우리 급식 맛있는 편이에요.”

“그렇지? 고맙다야. 이제 좀 안심이네~!!”


오늘도 급식실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조금만 주세요.”

“네. 고만큼요.”

“아뇨. 됐어요.”

음식마다 조금만 달라고 주문을 넣었다. 나는 급식실에서 환영받기는 아무래도 어렵겠다. 여하간 점심시간의 나의 목표는 이렇다.

'먹을 만큼 받아서 다 먹자.’

그런데 오늘은 그대로 못했다. 내일부터나 그렇게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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