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양선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monfresh Jan 16. 2023

웅이의 퇴장

웅이가 죽었다.

결국 웅이도 죽었다.


토리가 죽을 때 수명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과정을 보았다. 멀쩡하던 생명이 어느 날 갑자기 힘들어지더니 며칠째 밥을 안 먹고 있다가 죽었다.


웅이는 랑이랑 서열다툼 끝에 죽었다. 죽기 얼마 전까지 웅이가 랑이에게 심하게 대했다. 토리가 없어지자 그 둘 사이의 완충 역할이 없어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다 늙어서 행동도 굼뜨던 웅이가 랑이를 이겨놓는다는 것이다. 웅이는 사실 지난봄에 죽을 줄 알았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음식도 안 먹으려고 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목줄을 풀어주고 닭백숙도 해 먹이고 했더니 어떻게 어떻게 다시 살아났다. 그런 웅이가 천방지축 랑이를 어떻게 이기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랑이는 웅이에게 당해서 코에 상처를 입고 나서부터 웅이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도  때문에 둘이 부딪히게 되면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났다. 싸움은 둘 중에 하나가 이기면 끝이 났지만 그 과정이 여간 시끄럽고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 세상이나 개들의 세상이나 영원한 권력은 없는 법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 어느 날 밤에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나서 남편이 자다 말고 일어나 나가 보았다. 남편이 나가자 일단 싸움은 멈춰졌는데 여느 때 보다 싸움이 심각했나 보았다.

“오늘은 어째 웅이가 당한 것 같은데?”

“그래요? 왜?”

“랑이가 가만있지 않네. 아침에 나가서 좀 봐야 되겠어.”

“아이휴... 차라리 웅이를 다시 묶어 놓는 건 어때요?”


아침에 남편이 들어오면서 웅이를 묶어 놓았다고 다.

“웅이 큰일이네.”

“뭐가요? 부상이, 아니면 심리가?”

“심리가... 부상도 부상이고”

웅이 얼굴이 퉁퉁 부었지만 그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아마도 웅이의 심정이라고 했다.

“하룻저녁에 뒤집혔으니 웅이가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

당당했던 권력자가 어떻게 숨죽여 살겠는가, 그 처지가 너무 딱하다는 것이다. 웅이뿐 아니라 웅이에게 애정이 큰 남편이 크게 마음 아파했다. 그러나 오직 신체의 힘이 룰인 개들의 세상을 어찌하겠는가, 사람이 개들의 관계 정도는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사람의 착각이다.

“근데 까미가 대단하네.”

“까미가 왜?”

“어젯밤에 랑이한테 아주 세게 덤비더라구.”

웅이에게 쏟아지는 랑이의 공격을 막으려고 여간 대들지 않았다고 한다.

“어이구, 하나도 안 져.”

까미가 그 체구에 랑이에게 맞서다니. 까미는 체구는 작지만 아주 딴딴하게 생겼다. 서열이 제일 막내고 생활장면에서 누구랑 다투거나 덤비거나 하는 적은 없었다. 가끔 부리는 말썽은 무얼 물어뜯어 놓는 것, 대문 잠깐 열릴 때 밖으로 뛰어나가 뒷산으로 쏜살같이 올라가는 것 정도였다. 그런 까미가 큰 개들 싸움에 그렇게 맹렬하게 참견을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요 며칠은 까미가 웅이 자는 곳에서 같이 잤다고 한다. 개 네 마리가 다 각자 잠을 자는데 왜 까미가 웅이와 함께 잤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웅이에게 의지가 되어주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웅이는 그렇게 권력을 잃은 다음 힘을 못쓰고 음식도 안 먹고 있다가 죽었다. 필사적으로 유지해 온 권좌가 한 방에 뒤집혔고 그것이 곧 웅이의 말로였다. 랑이는 지금 잘 먹고 잘 놀고 잘 살고 있다. 까미도 활개치고 뛰어다니며 잘 살고 있다. 순이도 순하게 잘 살고 있다. 토리가 죽었을 때 다들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웅이도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웅이를 아주 잊고 싶지는 않다. 청이나 토리 백이 순이를 잊지 않는 것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범사에 감사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