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Jan 16. 2023
웅이가 죽었다.
결국 웅이도 죽었다.
토리가 죽을 때 수명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과정을 보았다. 멀쩡하던 생명이 어느 날 갑자기 힘들어지더니 며칠째 밥을 안 먹고 있다가 죽었다.
웅이는 랑이랑 서열다툼 끝에 죽었다. 죽기 얼마 전까지 웅이가 랑이에게 심하게 대했다. 토리가 없어지자 그 둘 사이의 완충 역할이 없어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다 늙어서 행동도 굼뜨던 웅이가 랑이를 이겨놓는다는 것이다. 웅이는 사실 지난봄에 죽을 줄 알았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음식도 안 먹으려고 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목줄을 풀어주고 닭백숙도 해 먹이고 했더니 어떻게 어떻게 다시 살아났다. 그런 웅이가 천방지축 랑이를 어떻게 이기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랑이는 웅이에게 당해서 코에 상처를 입고 나서부터 웅이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가도 뭐 때문에 둘이 부딪히게 되면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났다. 싸움은 둘 중에 하나가 이기면 끝이 났지만 그 과정이 여간 시끄럽고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 세상이나 개들의 세상이나 영원한 권력은 없는 법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 어느 날 밤에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나서 남편이 자다 말고 일어나 나가 보았다. 남편이 나가자 일단 싸움은 멈춰졌는데 여느 때 보다 싸움이 심각했나 보았다.
“오늘은 어째 웅이가 당한 것 같은데?”
“그래요? 왜?”
“랑이가 가만있지 않네. 아침에 나가서 좀 봐야 되겠어.”
“아이휴... 차라리 웅이를 다시 묶어 놓는 건 어때요?”
아침에 남편이 들어오면서 웅이를 묶어 놓았다고 했다.
“웅이 큰일이네.”
“뭐가요? 부상이, 아니면 심리가?”
“심리가... 부상도 부상이고”
웅이 얼굴이 퉁퉁 부었지만 그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아마도 웅이의 심정이라고 했다.
“하룻저녁에 뒤집혔으니 웅이가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
당당했던 권력자가 어떻게 숨죽여 살겠는가, 그 처지가 너무 딱하다는 것이다. 웅이뿐 아니라 웅이에게 애정이 큰 남편이 크게 마음 아파했다. 그러나 오직 신체의 힘이 룰인 개들의 세상을 어찌하겠는가, 사람이 개들의 관계 정도는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사람의 착각이다.
“근데 까미가 대단하네.”
“까미가 왜?”
“어젯밤에 랑이한테 아주 세게 덤비더라구.”
웅이에게 쏟아지는 랑이의 공격을 막으려고 여간 대들지 않았다고 한다.
“어이구, 하나도 안 져.”
까미가 그 체구에 랑이에게 맞서다니. 까미는 체구는 작지만 아주 딴딴하게 생겼다. 서열이 제일 막내고 생활장면에서 누구랑 다투거나 덤비거나 하는 적은 없었다. 가끔 부리는 말썽은 무얼 물어뜯어 놓는 것, 대문 잠깐 열릴 때 밖으로 뛰어나가 뒷산으로 쏜살같이 올라가는 것 정도였다. 그런 까미가 큰 개들 싸움에 그렇게 맹렬하게 참견을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요 며칠은 까미가 웅이 자는 곳에서 같이 잤다고 한다. 개 네 마리가 다 각자 잠을 자는데 왜 까미가 웅이와 함께 잤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웅이에게 의지가 되어주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웅이는 그렇게 권력을 잃은 다음 힘을 못쓰고 음식도 안 먹고 있다가 죽었다. 필사적으로 유지해 온 권좌가 한 방에 뒤집혔고 그것이 곧 웅이의 말로였다. 랑이는 지금 잘 먹고 잘 놀고 잘 살고 있다. 까미도 활개치고 뛰어다니며 잘 살고 있다. 순이도 순하게 잘 살고 있다. 토리가 죽었을 때 다들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웅이도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웅이를 아주 잊고 싶지는 않다. 청이나 토리 백이 순이를 잊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