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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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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Apr 03. 2023

엄마 마음 할머니 마음

아침에 아이들이 교문 앞에서 엄마랑 헤어진다. 교문 안쪽에 약간의 공간이 있고 아이들은 거기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간다. 엄마들은 아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교문 앞에 서 있다. 엄마들이 교문 안까지 들어와서 애들 신발을 벗기고 신기고 하다 보니 혼잡하기도 하고, 그 정도 신변처리는 스스로 하는 것도 교육이겠다 싶어서 교문 안으로는 아이들만 들어오도록 했더니 생기는 현상이다.

아이들이 실내화를 갈아 신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신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는 시간, 운동화를 벗는 시간, 실내화를 신는 시간, 신주머니에 운동화를 집어넣는 시간. 그중에서 제일 난이도가 높은 것은 운동화를 신주머니에 넣는 일이다. 운동화는 부피가 크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처음에는 한둘이다가 나중에 온 사람들이 보태져서 엄마들이 교문 입구를 막아서는 일이 종종 생긴다. 다른 아이들 통행은 생각 못 하고 내 아이를 쳐다보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나서서 정리를 한다. “어머니, 한발 이쪽으로 서주세요.”


주로 1학년 엄마들이지만 다 그렇지만은 않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일 학년도 혼자 걸어서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등은 작고 가방은 크다. 학교 가방 말고도 실내화 가방에 학원 가방에 주렁주렁 달렸다. 그래도 열심히 걸어와서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그런가하면 어떤 엄마는 다 큰 아이 실내화를 굳이 자기 손으로 꺼내주고 넣어주고 한다. 저 엄마 아이는 혼자서 그런 걸 못하는 걸까? 아니면 내 아이는 너무나 소중해서 그런 시중을 받아야 하는 건가?


엄마들만 학교에 오는 것이 아니다. 아빠들도 고정 인원이 있고 할머니들도 날마다 오는 분들이 있다. 아빠들은 비교적 쿨하다. 교문 앞에서 들여보내고 돌아서서 간다. 그런데 할머니들은 엄마보다 한술 더 뜬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문 앞에서 바이바이 하는데 할머니는 부적부적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애들이 보는데 형평성도 문제고 불문의 규칙을 깨는 것도 문제다. 아이가 신발을 다 갈아 신은 다음 내가 가서 말했다. “할머니, 아이 혼자 하게 하세요. 다 할 수 있어요.” 할머니가 일어서면서 머리를 세게 흔든다. 혼자 절대 못 한단다.


지난 주에는 급식 조리원들이 파업을 해서 점심에 간편식을 주게 되었다. 빵, 바나나, 떠먹는 요거트, 감귤주스 등이 나온다. 양은 충분히 준비했지만 혹시 영양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가정에서는 도시락을 싸서 보내도 된다고 안내가 되었다. 아이들 수업이 시작되고 한참 있다가 잠깐 복도로 나갔더니 할머니 한 분이 현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 할머니, 어쩐 일이세요? 손자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아니라 도시락을 안 가지고 가서.”

사실 도시락 싸 와도 된다고 했지만 그 말은 안 싸와도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할머니 마음에 내 손자는 꼭 주고 싶은 것을 어쩌랴. 학교 방문 예약제고, 방문자 등록이고 아무 절차도 안 하고 무조건 올라가는 발걸음을 무슨 수로 막을 수가 있을까? 그 할머니는 딸(아이의 엄마)도 놔두고 본인이 꼭 배웅과 마중을 하는데, 교실까지 배달되는 할머니 도시락 서비스를 받는 그랜마 보이의 입장이 어떨지 모르겠다.


어제는 한 할머니가 교문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사를 했더니 눈으로는 계속 손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자기 실내화 신는 거 보라고 하네요. 잘하네~!” 장한 손자는 혼자서 실내화 갈아 신는 퍼포먼스를 완수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돌아서서 집으로 갔다. 


    *    *    *


낮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햇김치를 담아놓았다고 하셔서 퇴근 후 들르겠다고 하고 출발할 때 전화를 드렸다. 엄마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마당에 나와 계셨다.

“엄마, 왜 나와 계셔?”

“그냥. 너 오는 거 보려고.”

팔십 대 엄마가 환갑 지난 딸이 오는 걸 보려고 나와 계신 것이다. 이러니 내가 교문 앞에 한참씩 서 있다 가는 엄마들, 할머니들을 박하게 대할 수가 없다. 그 마음에 제한을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아이들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의 주의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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