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밖에서 키우던 다육이들을 안으로 들여놓았다. 눈에 안보일 때는 봄내 여름내 그냥 지나쳤는데 내 시야 안으로 들여놓으니 부쩍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다육이들은 짱짱하게 잘 자라 있었다. 한여름의 땡볕과 비그리고 가뭄 등 일관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도 화분이 빽빽하도록 자라난 것이다.
시들고 마른 잎들을 떼어내고 다듬었다. 하다 보니 비좁은 화분에 빼곡히 들어찬 개체들을 나누어 화분을 하나 더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육이들의 특징상 잘라낸 가지나 떼어낸 잎들을 흙에 꽂아 놓으면 다시 새 개체가 생겨나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남편이 자꾸만 내년 봄에 하란다. 지금은 시기 상 식물들이 새 뿌리를 내리거나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내인데 왜 안 돼요? 그리고 봄까지 언제 기다려?"
사실 남편은 일반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고 굳이 안된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고 말고는 내 맘대로다. 내가 수긍을하지 않으니 남편이 내게 말했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는 거지. 시기와 절기를 모르는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알어?"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절시!"
아마도 남편이 생각한 단어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시절은 충청도 말로어리숙한 사람을 말한다. 허나 내가 말려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식으로 생각한다면모든 일에는 하고 싶을 때와 하기 싫을 때가 있는 법이다.
오늘도아침을 먹고 나서 '절시' 노릇을 좀 했다.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자연의 하는 일은 참 참 경이롭다. 어쩌면 저렇게 통통하고 튼실하게 잘 키워놓았을까. 줄기와 잎의 모습도 어떻게 스스로 예쁘게 되었을까. 정말 그 모습이 예술적이지 아니한가?
다만 자연에는 겨울이 오면 이제까지 잘 기른 것들을 모두 스러지게하는 매서운 힘이 있으니 나는 내 다육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안으로 들여놓은 것이다. 다육이들은 내년 5월에나 다시 밖으로 내어놓을 것이다. 충남지방에는 4월까지 서리가 내리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생장을 멈추고 있는 것들을 유지할 것이고 봄이 되면 웃자라서 모습이 흐트러진다. 그러면 가지들을 잘라 다듬어서 다시 밖에 내놓으면 가을까지 다시 빽빽하게 자랄 것이다. 내가 아는 시기와 절기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