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Jan 14. 2024
대문을 나서서
아침 해를 등지고 언덕을 오른다.
고개를 돌아 내려가면
검둥개가 지키는 집 앞이다.
덩치가 큰 검둥개는
제 밥그릇을 물고 서서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시내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마당에 종탑이 서 있는
가난한 시골 교회가 있다.
꼭대기에 매달린 종은
오래전에는 시간 맞춰 울리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나
지금은 긴 침묵 속에
하냥 지루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갱티고개를 오르는 길 양쪽에는
빈 가지 무성한 나무들이
시린 바람맞으며 가느다란 햇볕을 쬔다.
빈약한 볕을 모아
잎눈, 꽃눈을 키우는 힘겨운 계절이다.
꼭대기에 오르고 나면 내리막길이다.
속도를 줄이고 커브를 돌아
들오리가 잠을 자는 언덕을 지난다.
아침에 일어난 오리가
무슨 골똘한 생각을 하는지
차가 바로 옆을 지나는 데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다음 날은 네댓 마리가
오물조물 모여 앉은 것을 보았는데
그 뒤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같은 곳에 잠들지 않고
매일 자리를 바꾸는 것일까,
아니면 더 아늑한 다른 곳을 찾은 것일까.
그 아래 국화 농장에는
지난가을 팔다 남은 화분들이 바짝 마른 채
텅 빈 밭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길 옆 한 그루 나무에는
아직도 나뭇잎이 제법 달려있었다.
차를 타고 곁을 지나노라니
모두들 새가 되어 호로롱 날아갔다.
마을회관,
굴다리,
그리고 여기는 꽤 부유한 교회,
그다음은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
그리고 신정호 길을 지나면 시내 길이다.
거리의 절대 권력자인 신호등을
다섯 개쯤 통과하면
내가 아침마다 가는 목적지에 다다른다.
거기서 낮을 지내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가 저문다.
저녁을 먹고
얼마간의 게으른 시간을 보낸 다음
잠자리에 든다.
다시 대문을 나서서 언덕을 오르는 아침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