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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Mar 18. 2024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매기의 추억

퇴근 후에 친구들을 만나러 내포에 다. 교대 동기 친구들인데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날짜도 정해져 있다. 우리가 18회 졸업생이어서 매월 18일이 모임일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차를 마시러 갔다. 배가 불러서 무얼 더 마시는 것은 내키지 않지만 우리는 꼭 카페에 간다. 헤어지는 시간을 늦추고 이야기할 시간을 더 가지려는 것이다. 


카페는 시가지에서 약간 벗어난 공원가에 있었고 우리가 카페에서 일어났을 때는 어둡고 인적없는 길에 가로등이 드문드문 피어나 있었다. 그 풍경과 봄날 저녁의 한결 부드러워진 공기가 불현듯 어떤 기억을 불러내었다. 어렸을 적 어느날 저녁의 풍경 한 조각.


그때 우리 집은 시내 뒷쪽의 주택가였는데 아주 어둡지도 아주 환하지도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버지가 우리에게 산보를 가지고 하셨었다. 주택가를 얼마쯤 걷다 보면 밭 언덕이 나왔다. 동네를 벗어나 한적한 언덕길로 접어들면 주변에 집들이 없어 깜깜했는데 나는 낮에 들었던 귀신 이야기가 무서워 맨 뒤에 걷지 않으려고 앞으로 나아가곤 했었다.


나는 아래로 동생이 다섯 명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산보는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만의 시간이었다. 할머니와 삼촌은 같이 나오시않으셨다. 아마도 엄마와 우리에게 산보를 나가자고 하시던 아버지도 같이 나서시지 않은 할머니, 삼촌도 같은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어둑어둑해지는 언덕길을 걸으면서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노래를 함께 부르곤 했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바우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친구들과 헤어져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가로등이 줄지어 있는 길을 지나서 어둑한 작은 길로 접어들어 인적 없는 길을 지나며 혼자 옛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렸을 적에 배운 노래는 조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노랫말을 따로 떠올리지 않아도 입에서 저절로 가사가 불려 나온다. 마치 바로 어제 불렀던 노래처럼.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나는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 마치 내가 이 노래 속의 매기가 된 듯했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랑을 받는 매기, 아버지가 우리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 주실 때도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딸들이 커서 각자 누군가의 사랑하는 매기가 되는 것, 비록 현실 생활은 복잡다단할지언정 나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노래처럼 살기를 무의식 속에서 추구해 왔던 것 같다.


다음에 손녀가 놀러 오면 노래를 가르쳐 주어야겠다. 노래로 삶에 아름다운 기대와 희망을 심어 주어야겠다. 나중에 손녀가 컸을 때 옛날의 노래를 부르며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또는 노래처럼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며 커 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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