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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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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un 28. 2024

우유 당번을 하는 두 가지 태도

어제 아침의 일이다. 교문 앞에서 어느 아이와 할머니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빨리 들어가라고 하고 아이는 버티는 중이었다. 시간이 좀 걸리기에 내가 가 보았다.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얘가 학교 안 들어간다고 해서요. 우유 당번을 하기 싫대요.”

우유 당번은 아래층의 우유 냉장고에서 자기 학급의 우유를 교실로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그건 이미 1학년들도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이고(그 아이도 1학년이다.), 학교 생활에 요령이 붙은 고학년 아이들은 등교해서 교실로 올라갈 때 아예 우유상자를 가지고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유 당번에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도 되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유 당번을 하기 싫다고 하는 아이는 못 보았다.

“우유 당번? 그런  할머니랑 이야기할 게 아니라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 이야기했대요.”

하지만 그만두라고 하지 않으셨단다.

“당번은 돌아가면서 하지 않나요?”

“한 달씩 하는 것 같은데 거의 다 해서 세 번만 더하면 되는데 그러네요.”

“아, 그렇군요.”

할머니는 수업 시간 전에 들여보내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아이는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무조건 “싫어.”만 반복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있으니 내 말도 듣지 않았다.

“이따가 어떤 사정인지 담임 선생님께 한 번 알아볼게요. 잘 들여보내 주세요.”

우유는 먹으면서 자기만 당번에서 제외되겠다는 것은 무슨 심리일까, 너희들이 내게 갖다 주는 것은 좋지만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건가?      


오늘 아침의 일이다. 아이들 공부 시작 시간이 되어 조용한데 복도에 어떤 아이가 하나 있었다. 나를 보더니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손에 우유 팩이 하나 들려 있었다. 무슨 사정인가 물으니 자기 반 친구가 특수학급으로 공부를 하러 가면서 우유를 안 챙기고 그냥 내려왔단다. 그래서 그걸 가져다주러 왔는데 쑥스러워서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내가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라 직접 데리고 갔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선생님, 얘가 OO 친구인데 우유 가져다주러 왔대요.”

우유 당번의 역할이 우유를 가져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에게 전해주는 것까지 포함인 건가? 보통은 교실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가져간다. 그 아이가 스스로 설정한 역할인지 학급에서 정한 역할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수학급에 공부하러 내려온 친구 몫을 가져다 까지 주다니, 우유 당번을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 아이는 수줍고 얌전하던데 역할에 있어서는 매우 적극적이다.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어제 우유 당번 하기 싫다고 할머니한테 떼쓰던 아이를 보고 난 뒤라 더 달라 보였다.      


어제 그 ‘우유당번 하기 싫다.’ 던 아이의 사정이 궁금해서 아이들 하교 후에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아이가 왜 우유 당번을 하기 싫다는 것인지, 선생님은 왜 하기 싫다는 것을 받아주지 않았는지였다.

선생님도 왜 하기 싫은 건지 아이에게 물어보았는데 대답은 ‘너무 더워서’였다고 한다. 날이 너무 더운 것은 선생님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 ‘너는 더우니 우리가 해 줄게.’할 문제도 아닐 것이다. 여하간 선생님은 남은 기간 동안 우유 당번을 마저 하도록 일렀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문제를 보는 다른 시각이 있었다. 우유 당번 문제는 표면적인 것이고 가족 관계에서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엄마를 잃은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학교에 들어오면 다른 부적응행동을 보이지 않고 선생님 이야기도 잘 듣는다고 한다. 그럼 왜 할머니를 그렇게 애를 먹일까? 혹시 엄마에 대한 애착 욕구를 채울 수 없어서 하게되는 행동이 아닐까. 선생님이 듣기로는 코로나 예방접종 이후로 아이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한다. 아이는 어쩌면 할머니랑 떨어져서 혼자 학교로 들어가는 게 싫을 수도 있고, 가족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계속 가지게 하려는 무의식도 있을 수 있다. 현재 가족은 아빠와 할머니인데 학교에서 필요할 때는 선생님이 그 아빠와 통화를 하는데 준비물이며 뭐며 다른 아이들보다 빠지지 않게 잘 챙겨주신단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이의 행동이 다르게 해석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역할 활동에서 자기만 빠지려 하는가 하는 오해를 거두었다. 그 대신 마음이 좀 짠했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도 고맙고, 그렇다고 특별대우를 하지 않고 공평하게 지도하시는 것도 잘하신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도 그 할머니가 아이를 데려다주러 오신 것을 보았다. 나는 쫓아 가서 물어보지 않고 그냥 인사만 했다. 분위기로 보아 오늘은 실랑이가 없는 것 같았다. 모쪼록 아이가 선선히 학교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아이의 마음이 잘 아물기를 바라고 그 공백이 풍성하게 채워지기를 바란다. 그래도 할머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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