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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ul 05. 2024

오해와 오해

예전에 어느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OO초등학교는 작은 학교지만 방과후 교육과정이 아주 다양했다. 그중 오카리나 동아리도 있었다. 예술 강사로 학교에 나오던 이를 학교에서 별도로 추가계약을 해서 원하는 아이들이 방과후에 오카리나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몇 달 하다 보니 곡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나중에는 잘하는 아이들 몇이 남았다. 학교에서는 합주용 오카리나 세트를 구입해서 그 아이들이 쓰도록 했다. 수업시간에는 똑같은 멜로디를 함께 연주하는 제주 형식이었지만 동아리에서는 알토 소프라노 베이스 등 다른 멜로디를 함께 연주하는 합주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강사 선생님이 오는 날은 그 선생님과 함께, 오지 않는 날은 아이들끼리 연습을 했다. 오후가 되면 학교에 오카리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카리나 소리가 아름다운 줄은 알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연주를 하니 더욱 아름답게 들렸다.


어느 날 그 강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대회에 한번 나가보자고 제안을 했다. 어디선가 충남 경연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출전을 했다. 그런데 오카리나를 잘 연주하는 팀이 생각보다 많았는지 상위 입상은 못하고 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선생님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 실망을 한 건지 화가 난 건지 뭔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더니 학부모에게 서운한 말을 들어서 속이 무척 상했다고 했다. “동상 밖에 못 탔어?”하고 아이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며 무척 서운해했다.


듣고 보니 나도 딱히 뭐라고 보태 줄 말이 없었다. 내가 알기론 어머니가 그렇게 멋없이 말할 사람이 아닌데 여하간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란다. 아이들도 강사 선생님도 함께 신나서 연주를 하던 분위기가 싸해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옆에서 보는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며칠 지나고 나서 급식 시간에 그이랑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 동상밖에 못 탔냐고, 그 어머니 말씀이 연주를 그렇게 잘했는데도 동상밖에 안 되더냐는 말 아니었어요?”

그동안 생각하기를 ‘겨우 동상 밖에 못 탔느냐, 그것밖에 못 가르쳤느냐’로 생각했는데 중요한 것은 ‘동상 밖에’ 못 탄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잘했는데도’였던 것이다.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어조나 표정 등으로 그런 뜻이 전달되었을 텐데 일부 워딩만 떼어서 전해 듣는 입장에서는 오해가 생겼던 것이다. 그 이후로 냉랭한 얼굴을 풀고 학기를 마무리했다. 어차피 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기는 했지만 그이의 입장에서는 하마터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마칠 뻔했다.


   *     *     *


오래전 한 학교에서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운동장에서 놀던 한 아이의 잘못으로 유리창이 깨졌다. 공이었던지 돌멩이었던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여하간 그 아이가 던진 무엇에 맞아서 그렇게 되었다. 그 아이는 바로 잘못을 시인했고 유리 교체 비용은 그 아이가 내기로 했다. 그런 경우 보통 선생님이 학부모와 통화를 해서 의논하는데 그 아이는 약간 다른 제안을 했다. 스스로 책임지겠으니 부모님께는 알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때는 지금 같은 시스템 창이 아니었고 유리 한 장 끼우는 값은 크게 비싸지 않았다. 아이가 용돈을 모은다면 가능한 금액이었다. 흔히 잘못은 아이들이 저지르지만 책임은 부모가 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하는 경우가 없어서 나는 그 제안을 아주 대견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얼마쯤 지났을 때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왔다. 그 아이의 아빠였는데 내 처사가 옳지 않다고 거칠게 항의했다. ‘어떻게 아이한테 스스로 유리값을 물어내라고 할 수 있느냐, 값이 얼마인지 당장 주겠다. 아이에게 그런 부담을 주다니 부모로서 묵과하지 않겠다.’등 목소리가 컸다.


한참 들은 후에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잘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알겠다는 것은 학부모가 화가 났다는 것이고, 모르겠는 것은 뭐 때문에 그렇게 격앙되었는지 하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것을 용납한 게 문제였는지, 부모님께 알리지 말고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들어준 게 잘못인 건지, 아니면 담임이나 학교가 유리값을 냈어야 한다는 건지.(유리는 깨진대로 둘 수가 없으니 학교에서 먼저 갈아 끼운다. 아이가 유리 값을 가져온다면 행정실에 납입해야 할 것이다.) 한참 당하고 나니 나도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고 나에게 화를 내러 찾아온 성인 남자에게 주눅이 들어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러는 애들을 별로 못 봤는데 OO는 스스로 책임진다고 해서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렇게 할 일이 아니었나 보다. “여하간 알겠습니다.”


그런데 학부모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다. 그 아빠가 자기가 실수했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다는 것을. 그것을 보니 나도 알아졌다. 그 아빠가 화가 난 이유를 말이다. 내가 아이에게 스스로 유리값을 마련해서 책임지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내가 말을 할 차례인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오해한 것을 깨달은 것 같았지만 아무런 수습을 하지 않고 그냥 갔다. 그 뒤로 그 유리값이 행정실에 입금되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인데 근래 한 아이가 돌멩이를 차면서 놀다가 유리를 깬 일이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옛 기억이 났다. 일단 학교에서 사람을 불러 갈아까웠는데 하필 비싼 유리를 깨서 비용이 사십만 원이나 들었다. 계산을 정확히 하자면 당연히 그 아이가 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도 놀랐을 것이고 더구나 1학년이다. 자꾸만 인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개인의 잘못을 아무일 없이 공금을 써서 해결하는 것이 공정할까,  담임선생님에게  어떻게 지도했는지 물어보니 아이에게 확인을 했고  학부모에게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아이가 이번 일을 통해서 배워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정일까 책임일까,

생각 좀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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