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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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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un 26. 2024

안아 주세요.

혹은, 안아 드릴게요.

일과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화장실에 가려고 잠깐 나갔다가 교무실 앞에서 한 무리의 여자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우르르 몰려왔다. 6학년이라고 한다. 내게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하나 드실래요?”

“오, 나 주는 거야?”

“네~!!”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교장실은 어떻게 생겼어요?”

“교장실 너희 한 번도 안 와 봤어?”

아이들이 교장실에 오는 경우는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게 되었거나, 학생회 임원이나 방송반원들이 의논 할게 있거나, 교무실에 갈 일을 잘못해서 교장실로 오거나,  공부시간에 쓴 편지나 실과 시간에 만든 샌드위치를 전해주러 오는 등 다양한 경우가 있다.

“네.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래서 내가 교장실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와. 이렇게 생겼어~!!”


아이들이 들어와서 내 책상과 회의 탁자와 응접 테이블, 소파를 구경하면서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와~ 멋있다.”

“야 너희들 이거 알지? 드라마에서 나오는 거.”

“회장님 책상에 이런 거 있잖아.”

드라마에서 나온다는 것은 명패였다. 내가 쓰고 있는 명패는 교감에서 승진할 때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아크릴로 되어있는데 유리처럼 매끈한 면에 직명과 이름이 쓰여 있다.

“이건 뭐예요?”

펜 꽂이에 볼펜이 두 자루 세워서 꽂혀 있다.

“볼펜이야, 선생님들하고 회의할 때 쓰는 거야.”


내가 아이들에게 각 위치와 물건의 용도를 말해 주었다.

“이 책상은 교장선생님이 혼자서 일할 때 쓰는 거야. 이쪽은 선생님들과 의논할 때 앉는 곳이고, 저쪽은 손님이 오셨을 때 앉는 곳이야.”

아이들은 흰 천으로 된 소파 덮개도 티슈 곽 덮개도 멋있다고 했다. 여자아이들이라 예쁜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오늘은 마침 교장실 탁자에 꽃도 놓여있었다.


아이들은 별 것 아닌 것에도 ‘와~ 멋있다.’하면서 좋아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배웅을 해주려고 복도에 나갔다. 한 아이가 내게 말했다.

한 번 안아 주시면 안 돼요?”

“그래? 안아 줘?”

“네. 저도요.”

“저도요.”

어린 1학년 아이들도 나에게 안아달라고는 안 하는데 다 큰 6학년 아이들이 그래서 내심 놀랐다. 아이들이 차례로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왔다. 이런 것도 내가 할머니 선생님이어서 가능한 일 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를 가깝게 여기고 좋아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무척 뿌듯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전에 없이 나에게 더 잘 대해주는 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학교 안팎에 내가 이번 학기를 마치고 퇴직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어떤 1학년 아이도, 학교 앞에서 만난 학부모들도 내게 ‘아쉽다.’ 거나 ‘그동안 잘해 주셔서 고맙다.’ 거나 하는 인사들을 했다. 아직 임기가 두어 달 남았는데 미리 그런 말들이 오가는 것은 후임 교장선생님을 공모하는 과정에서 내가 정년퇴직 한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6학년 여학생들이 나에게 안아달라고 한 것이 사실은 ‘안아 드릴게요.’였고, 교장실 구경에 대한 답례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퇴직 소문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마움과 친근함, 그리고 약간의 위로를 더한 제스처가 아닌가.


사실 정년퇴직이 축하받을 일이지 위로받을 일은 아니다. 그래도 아쉬워하는 마음이 고맙다. 나도 아쉽다. 이젠 아이들이 주는 사랑을 더는 받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의 사랑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내가 어떤 속성을 가졌던 수양이 되었던 덜 되었던, 그런 것들은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아침에 교문에서 반겨주고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가끔 방송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마도 자기들을 반기고 좋아해 주는 사람인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누구에겐가 이런 계산 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퇴직을 즈음한 시점에서 아쉬워야 다. 직에 따르는 온갖 복잡한 문제들로부터 분리되는 홀가분함과 긴 레이스를 드디어 완주하는 뿌듯함과 지금까지와전혀 다른 생활을 맞이하는 설렘도 있다는 것은 비밀이다.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계획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스러졌다 하면서 계속 변경이 되고 있어 마치 스무 살 적의 변덕쟁이로 돌아간 분이다. 그래도 나는 공식적으로 아쉽다.


오늘은 방송반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 방송조회를 녹화했다. 그래도 방학식, 개학식, 그리고 작별 인사 등 방송이 세 번 더 남았다.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아이들은 어떤 얼굴일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나를 안아주고 간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다. 그때 이임 인사를 공연히 생방송으로 하다가 실수하지 말고 미리 녹화를 해 놓아야 할까 보다. 아직도 두 달이나 남았는데 생각하다가 벌써 눈물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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