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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un 05. 2024

어느 하루의 리포트

‘오늘은’이라고 쓰고서

나는 잠깐 생각한다.

어떤 하루였나 하고

점수를 주게 되면 몇 점일까?

-애니메이션 ‘사랑의 학교’ 주제가 중 한 소절-


학교생활은 내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한다. 여러 요소가 혼재하는 복잡한 생활이다. 어떨 때는 한동안 별일 없이 잘 지나가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도 한다. 요즘은 학생, 학부모들의 일난도가 높은 구간을 지나고 있다. 그래도 그사이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좋았다 나빴다 한다.


쉬는 시간, 복도를 걸어가는데 2학년 여자아이가 운동장에서 들어오다가 나를 보고 다가왔다.

“교장 선생님, 제가 좀 전에 보았는데 개미가 개미를 들고 갔어요.”

한 개미가 다른 개미를 물고 갔다는 건지, 한 개미가 다른 개미를 등에 업고 갔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알아들은 척 “아, 그랬어?하고  대답해 주었다. 아이의 진지하고 순진모습에 잠시 근심을 잊고 웃었다.


교장실에서 집무를 하는데 밖에서 무슨 고함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 그치지 않기에 나가 보았더니 3,4층 계단참에 6학년 남학생 OO가 있었다. 올라가면서 혹시 그 아이가 아닐까 했었다. 아이 말로는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과 말다툼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자기만 나무랐다고 한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실내화를 벗어서 바닥에 두드리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곳은 4층까지 이어진 계단실 이어서 소리의 공명과 증폭 효과가 난다. 아무 데도 가지 않겠고 거기서 계속 의사표시를 하겠다는 아이를 겨우 교무실로 데리고 내려갔다. 여차저차 잘 달래서 데리고 있다가 교실로 데려다주었다.


담임선생님도 참 고생하신다. OO의 화가 폭발하는 포인트도 예측할 수 없고, 분노를 삭이거나 낮추는 방법도 따로 없기 때문이다. 학기 초에 OO가 있는 학급을 자원해서 맡았지만 지금은 선생님도 지쳤을 것이다. 아이들이 하교했을 무렵 선생님께 쪽지를 보냈다.

"수고하십니다. 혹시 그 학급 괜히 맡았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요?"

"아닙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OO도 참 어렵겠다. 그 아이는 학교 생활에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고, 학교에 있다는 것은 오로지 휴대폰과 떨어져 있는 쓸데없는 시간으로 여길 뿐이다. 그러니 학년 선생님들이 애써 구성한 교육 활동들이 다 의미가 없다. 오늘도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을 동원해서 각각의 활동을 하는 중에 일어났다. 가끔 담임선생님이 생활지도를 위해 따로 남으라고 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벌이라고 한다. 얼른 집에 가서 휴대폰 게임을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정규 편성 시간은 어쩔 수 없지만 가외의 시간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올해 달라진 것은 6교시 마칠 때까지는 학교에 있는다는 것이다. 학교점심은 먹지 않는다. 5학년 때에는 4교시만 마치고 점심 전에 엄마랑 같이 귀가를 했었다. 공부 마칠 때까지 배고프지 않나 물으니 ‘그닥’이란다. OO는 다른 사람들은 다 싫은데 엄마는 좋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점심시간, 급식실에 갔다. 밥을 먹고 있는데 2학년 @@이가 와서 인사를 했다.  따로 와서 90도로 인사를 하고 간다. 날마다 어디에 있다가 나타나는 걸까. 아마 나보다 한발 먼저 밥을 먹는가 보다. @@이가 나한테 날마다 인사를 하는데 나는 날마다 깜박하고 있다가 새롭게 놀란다. 나는 곧 퇴직을 앞둔 교장선생님이고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른이지만 그 어린아이가 내게 마음을 써주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다.


화장실에 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얘들아, 부 다 마쳤니?"

"네"

"그래. 잘 가~!”

“네. 안녕히 계세요.”

한 아이가 물었다.

“교장 선생님은 언제 퇴근하세요?”

내가 퇴근 시간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이 “하아~”하고 위로를 해 주었다. 자기들은 집으로 가는데 나는 아직 집에 못 가기 때문이다.


교무실에 들어갔다. 요즘 며칠째 거론되고 있는 아이들 간의 문제가 결국 어른이 나서는 문제로 번졌다. 난감하다. 종종 자기중심적인 어린아이들을 상대하는 일도 어렵기는 하지만 자기 아이 중심인 어른들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이들이 주로 거론하는 단어는 CCTV 열람, 아동학대, 학교폭력, 경찰, 변호사, 법적대응, 신문기자, 인권 침해, 진심 어린 사과, 용서 없음 등이다. 그렇게 세게 나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소한 문제하나 좋게 해결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최대한 세게 어필 한다. 아이의 마음은 달래주고, 잘못은 지도하고, 쌍방 간에 과실은 인정하고, 다시 잘 어울려 지낼 수 있게 하면 된다. 이런 것은 다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경찰, 교육청, 신문기자, 변호사는 못하는 일이다. 이 말 저 말을 듣자 하니 골치가 아프다. 나도 얼른 집에 가고 싶다.


그래도 내게는 개미들의 신기한 행동을 알려주는 아이와, 나보다 일찍 귀가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아이들과, 점심시간마다 나타나서 깍듯이 인사를 하는 아이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도저히 조절할 수 없는 분노로 학교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도 내가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고 배가 고프다는 말에는 마음을 바꾸어 교실로 다시 올라가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복잡한 오늘도 ‘아름다웠다’고 하겠다. 아직 어른들의 문제가 해결이 안 나고 있으니 내일도 지속될 것이지만 내일 걱정은 내일  일이다. 




"오늘은 즐거운 하루였다.

내일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다."

ㅡ옛 제 아홉 살 ♡♡이의 일기 후렴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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