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May 13. 2024
아침에 교문 앞에서 자주 만나는 2학년 여자아이가 있다. 내가 여러 아이들 중에서 그 아이를 따로 기억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교장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공식적인 관계를 그 아이가 사적인 관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내게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다. 그리고는 줄 것이 있다면서 주머니를 뒤지더니 손을 꺼내며 손가락 하트를 내게 날렸다. 나도 하트로 대답해 주었다. 그 뒤에도 몇 번 더 그랬는데 처음에 한두 번은 내가 속았고 그다음부터는 이미 예상한 장난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손 하트 놀이는 시들해졌다.
또 어느 날은 내게 풀 이삭을 꺾어다 주었다. 새로 난 풀의 어린 이삭이어서 맨초롬하고 싱그러웠다. 그래서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동안 그걸 손에 들고 있었다. 풀이삭은 곧 시들어서 축 늘어져버렸다. 지나는 다른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 그거 뭐예요?”
“왜 들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이건 풀 이삭이고, 그럴 사정이 있어.”
금방 버리자니 성의를 무시한 게 되겠고, 들고 있자니 설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풀 이삭 선물을 또 받게 되었다. 그런데 내 반응이 아무래도 처음과 달랐는지 더는 풀 이삭을 꺾어다 주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또 이벤트가 있었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많이 오는 시간이어서 바빴는데 그 아이가 내게 왔다.
“안녕하세요?”
“안녕? 어서 와.”
“교장 선생님!”
“응?”
“이거요.”
“뭐야?”
무언가 두 손에 담아 쥐고 있었는데 보니 빨간 장미의 꽃잎이었다. 꽃송이를 해체했는지 꽃잎만 손에 담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내게 꽃잎을 뿌려주었다. 마치 티비에서 본 어느 장면처럼 꽃잎이 공중에 띄워졌다가 내 주변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아이는 교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오고 있고, 꽃잎은 바닥에 흩어져 있고, 이걸 어쩔까, 잠시 생각하다가 아이가 저만치 갔을 즈음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주웠다. 꽃잎을 뿌린 아이는 자기의 이벤트에 만족을 해서 가버렸고 그 꽃잎을 줍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때 마침 지나던 다른 아이가 같이 주워주었다.
손가락 하트나 풀 이삭을 꺾어 왔을 때는 별 부담이 없었는데 장미 꽃잎을 따 왔을 때는 좀 난감한 생각도 들었다. ‘저 꽃을 어디서 땄을까?’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꽃잎의 크기나 깨끗한 상태로 보아서 이제 막 피어난 새 꽃이거나 곧 피어날 봉오리쯤 될 터였다.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으로는 어느 길가나 아파트 단지에서 따지 않았나 싶다. 여럿이 같이 보는 꽃을 개인적으로 따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인데 그렇다고 아이에게 잘잘못을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참 애매하다.
여하간 나는 이런 이벤트가 부담스럽다. 그냥 아침 등굣길의 아이들과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자 하였는데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 자꾸 마음을 주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마음만 받고 싶은데 이벤트가 점점 커지지 않을까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