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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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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Oct 18. 2024

보름 밤 소묘

저녁을 먹고 마당에 달을 보러 나갔다. 오늘이 보름인데 슈퍼 문이 뜬다고 해서 보려는 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높이  있고 마당에는 바람이 술렁술렁 불었다.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이다. 달무리가 하늘에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내일과 모레 소식이 있었다.


남편과 같이 서서 잠깐 달구경을 하고 나서 나는 마당을 걸었다. 남편은 나에게서 건너간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현관 앞 벤치에 잠깐 앉아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바람과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좋아서 마당에서 순이 호순이 호야와 함께 걸었다. 나는 개들을 이쁘다고 한 적이 없는데 개들은 무척 사랑을 받 것처럼 반갑게 달겨든다. 그중에서도 순이는 한 시간 남짓 내가 마당에 있는 동안 끝까지 나를 따라다녔다.


 아랫마당의 느티나무 밑에 가 보았다. 낙엽이 수북이 내려앉았다. 며칠 전에 내가 대비로 한 번 쓸었는데 그때 공연한 일을 한 것 같다. 어차피 낙엽은 계속 내릴 텐데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자는 남편의 말이 맞았다. 낙엽들이 달빛을 받아 약하게 빛을 반사했다. 나는 그 위를 버스럭 버스럭 밟으며 윗마당까지 반복하여 왔다 갔다 했다. 노래를 들으며 걸으니 마당에서 뱅글뱅글 도는 것도 할만했다.


순이는 어쩌면 저럴까. 호야와 호순이는 따라다니다 말고 저희들끼리 놀고 있는데 순이는 참 변함도 없다. 어떤 때는 내 발치에 너무 바짝 있어서 하마터면 걸려 넘어질 뻔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게 순이가 나를 반겨주는 건지, 자기 서열을 보여주려는 건지, 아니면 유독 순이한테만 짖궂게 구는 호야, 호순이의 장난을 피하려는 건지 생각은 알 수 없지만 나는 되도록 순이와 떨어져서 걸었다.  순이가 언제 또 앞발을 내 에 닦을지 몰라서 그렇다. 내가 잠깐 멈추어 서면 와서 내 다리를 두 발로 짚는다. 마당에 나갈 때마다 그래서 내가 손사래를 치며 방어를 하는 데도 이걸 번번이 당한다. 지난번에도 볼일이 있어 외출하는데 나가려고 갈아입은 옷에 발 도장을 찍었다. 다시 들어가자니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을 계산해서 나왔는데 공연히 오 분 십 분 허비하기도 싫고 해서 그래서 할 수 없이 손으로 툭툭 털고 나갔다.  


오늘 걸은 이 한 시간 정도이니 시간으로 보면 얼추 신정호 둘레길을 한 바퀴 돈 셈이다. 내 걸음으로 신정호를 한 바퀴 도는데 빨리 걸으면 한 시간, 대충 걸으면 70분 정도 걸린다. 신정호에는 지금 아마 두 개의 달이 떴을 것이다. 하늘에 하나 물속에 하나. 나는 그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언제 한번 달밤에 가봐야겠다.


운동량도 채웠고 달빛 산책도 그만하면 되었고 해서 순이 호야 호순이에게 인사를 했다. 뒤꼍에 묶어놓은 송이에게도 가서 들어간다고 말해주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운동을 하고 오니 피가 더워졌는지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요새 낮밤이 바뀌어서 어제도 밤을 거의 새우다 시피 했다. 오늘은 일찍 잤으면 좋겠는데 참 곤란하다. 이제 잠시 가만히 앉아 피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보름달과 달무리, 어두운 느티나무 그림자, 버스럭 버스럭 낙엽 밟히는 소리, 바람결에 수런수런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잊고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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