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Oct 15. 2024
지난주 한 사흘을 심하게 앓았다. 감기에 호되게 걸렸던 것이다. 사실 이게 감기인지 뭐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호흡기 전반에 걸쳐 문제가 있었고 전신의 거죽과 삭신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매해 비슷한 일을 겪기는 했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유난히 심하고 열이 나서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오죽하면 주말에 놀러 오는 아들네 가족을 오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밤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몹시 고단한 것도 있고 자칫 아이들에게 감기가 옮겨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증상이 심했던 사흘 동안은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도 여간 어렵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금방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별러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것도 밤이 되면 더 심해졌다. 혹시 내가 코로나에 걸린 걸까? 하지만 전에 코로나를 확진받았을 때에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었다. 이렇게 몸이 아플 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내가 얼마 전에 퇴직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를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똑바른 근무는커녕 자력으로 출퇴근도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병원에 갔었으나 의사는 내 안색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처방을 했다. '작년의 증상과 같네요.' 어쩌다 보니 열이 난다고 말도 못 했다. 하지만 내 체온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의사가 부르기 전에 간호사가 내 체온을 쟀기 때문이다. 체온은 37.9도였다.
여러 증상 중에서도 코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과 열이 거라 앉지 않는 것이 몹시 괴로웠다. 어지럽고 팔다리에 힘이 빠졌다. 정신이 혼곤해서 잠이 자꾸 덧들고 깨어 있어도 몽롱했다. 거기다 가장 어려웠던 하루는 남편이 모임이 있어 나갔는데 나 혼자 저녁을 먹는 것이 내 숙제였다. '약을 먹어야 되니 꼭 저녁을 챙겨 먹으라.'고 말하는 것을 비몽사몽 간에 들었는데 나혼자 그렇게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래도 약을 안 먹으면 안 되겠어서 간신히 먹었다.
며칠 전 증상이 그리 심하기 전일 때 하루는 꿈을 꾸었다. 내가 몸이 아파서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학교에 갈 시간이 지났다. 낭패였다. 공직자들은 근무시간에 근무장소에 있던지 아니면 출장이든 지각이든 조퇴든 해당시간에 어디서 무얼하는지를 밝혀 필요한 복무를 달아야 한다. 그런 조치 없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것은 무단 이석이다. 그런데 학교에 아무런 연락도 못하고 이 시간이 되다니, 아픈 건 할 수 없지만 아무런 복무신청이나 결재 없이 자리를 비운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관리자로서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 망정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한참을 난감해하다 깨어나 보니 꿈이었다. 천만다행이다. 나는 이제 지각도 없고 조퇴도 없다. 출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의식은 내가 퇴직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무의식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이런 꿈을 꾸게한다. 비숫한 꿈을 며칠 전에도 꾸었으니 퇴직하고 달포 남짓에 두 번이나 꾼 것이다. 평소 일어나던 시간을 지나 아직도 자는 몸을 무의식이 깨우려고 하는 거였나? 아니면 몸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결국 학교에 늦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무언의 경고였을까?
어쩌면 이번에 감기를 그 정도로 심하게 앓게 된 것도 퇴직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아직 현직에 있었다면 근무에 지장이 없도록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반드시 손을 썼을 것이다. '오늘 아파서 학교에 못 가요.' 아무에게도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이번 감기를 앓으면서 생각을 했다. 퇴직했다고, 출근 안 해도 된다고, 건강문제를 소홀히 다루면 안 되겠다. 가장 흔한 질병인 감기 만으로도 삶의 질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절감했다. 삼일동안 침대에 누워있자니 금방 인생의 허무가 밀려왔다. '이제 내 생활은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어제는 일어나 활동할 정도가 되어 식사도 제때하고 한참 앉아있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니 해야 할 일들이 생각이 났고 활동을 하다 보니 의욕이 되살아 났다. '아, 몸만 아프지 않으면 인생은 어느 나이든지 다 살만하겠구나.' 며칠 전 만 해도 인생 다 산 듯 비관적이던 마음이 어느새 하루 일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가서 마당일을 하기도 했다. 퇴직을 하고 보니 시간이 분절이 아니라 연속선 상의 무엇이 되었다. 예를 들면 그전의 시간이 A4 용지 묶음이었다면 지금의 시간은 기다란 두루마리 전지여서 내가 필요한 만큼씩 베어내어 쓰는 것과 같다. 나는 이 새로운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맘 놓고 아무 때나 아파도 되고, 아무 때나 볼일 보러 나가도 되고, 아무 시간이나 잠들어도 되고, 아무 시간까지나 깨어있어도 된다.
앓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생각 따로 몸 따로였는데 생각과 몸이 다시 싱크로율을 회복했다. 그리고 실제로 몸이 조금 가벼워지기도 했다. 퇴직 이후 몸무게가 2.5 킬로그램이나 빠졌는데 그중 얼마는 마당에서 풀 뽑느라 흘린 땀으로 빠졌고, 얼마는 몇 차례 배가 아플 때 빠졌고, 나머지는 이번 감기를 앓는 동안 고생을 해서 빠졌다. 이 나이에 살 빠지는 것이 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배가 홀쭉해진 것이 혈당관리에는 좀 유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퇴직하고 거의 삼분의 일 정도는 이래 저래 아프다가 시간이 지나고 있다. 수십년간의 긴장이 해제되자 그동안 눌려 있던 감정과 감각들이 소리 없이 풀어져 나오는가 보다. 일과든 감각이든 어차피 자리를 다시 설정하게 되겠지만 지금의 혼돈이 그 과정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여전히 흐르고 있는지, 심지어 존재하는 지도 잘 몰랐던 강물 같은 조용한 세월은 스물 몇 살의 파르란 청년을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나이를 먹는 것에는 유감이 없다.
내 젊은 날도 사랑하고 지금의 나날들도 사랑한다. 다만 신체기능이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퇴직을 하면서 마음의 부적응은 스스로 염려했지만 몸도 같이 적응해야 하는 거였다니 내가 그건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