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Feb 11. 2016
< 따라오지 마>
남편이랑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던 중에 휴게소에 들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남편의 팔을 붙들고 따라가는데 어느 지점에서 팔을 빼더니 따라오지 말고 저쪽으로 가란다.
“응? 왜요?”
나는 잠깐이지만 당황하였다.
“이쪽은 남자 칸이야.”
“아, 맞다. 우리 화장실 가는 거였지?”
아무리 부부지간이라지만 같이 갈 수 없는 곳도 있는 법, 서운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 함께 갈 수 없는 길 >
길 아래 사시는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문상을 갔다. 우리는 아산의 한 시골 마을에 집을 짓고 이사와 살고 있다. 구 년 전 여름방학 어느 날 남편과 내가 놀이 삼아 드라이브를 나섰던 길에 우연히 동네 구경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의 집터를 사게 되었다. 당시는 대지가 아니고 논이었는데 여러 절차를 거쳐 집을 짓고 들어와 살게 된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땅을 판 것이 그 어르신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땅 값을 잘 모르던 우리가 당시 주변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그 땅을 샀건만 ‘자신이 평생 지켜오던 땅에 다른 사람이 집을 짓고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하는 생각에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하던 다소 어색하고 계면쩍은 인연이었다.
빈소에 절을 하고 나와 보니 한편에 아주머님이 계셨다. 평생 밭에 엎드려 지내신 데다 나이가 들면서 야위셔서 굽고 마른 몸이었다. 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상중에도 반가워하셨다. 금방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다며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는데 늙어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주머니, 상심이 크시지요?”
“야, 병원 가신지 열사흘 만에 가셨슈.”
“네. 이제 혼자 계셔야겠네요. 어떡하신대요?”
“그르게유. 으떠케 해얄지 물르겄슈. 이제 정신도 똑똑지 않구, 사람두 잘 몰러보겄구, 선상님도 어디서 보면 몰러 볼 거 같유 인젠.”
“아이구, 아주머니 맘 약해지셔서 큰일 나셨네.”
“딸은 상 치르고 나서 즈이 집으로 가서 같이 살자는데 따러가야 허나 으떠케 해야한댜. 가잔다구 선뜻 가기도 어렵구......”
아주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남은 삶을 걱정하셨다. 나이 먹어 온전치 못한 몸을 자식에게 의탁하자니 미안하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마음은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었고 가벼워진 몸만큼이나 허망해 보였다. 내가 위로 차 잡아드린 손을 쭈글쭈글하고 앙 마른 손으로 꼭 쥐시는 것이 누구에게든 의지하고 싶은 마음만 같아 내 맘도 아팠다.
그러나 어찌하랴, 할아버지가 가신 곳은 함께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휴게소 화장실 앞에서 헤어지는 것은 잠시 이별이지만 그 아주머니의 이별은 영 이별인 것을. 사실 이러한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다. 부모 자식이든 부부지간이든. 다만 그러한 이별에 맞닥뜨릴 때 까지 우리는 모르는 일로 하고 살 일이다. 미리 준비한다고 준비되어질 마음도 아니고, 그런다고 더 작아질 슬픔도 아닌 까닭이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