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양선생활

큰 비가 오다

by lemonfresh

서울에 있다가 오늘 집으로 내려가는 날인데 비가 심하게 왔다. 아침 일찍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집에는 비가 이만저만 온 게 아니라며 서울 상황을 물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은 그리 심한 줄 몰맀는데 전화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바깥이 껌껌해지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사실은 간밤부터 비가 제법 내린 모양인데 아파트 11층에서 느끼기에는 그리 심한 줄을 몰랐었다.


아산에는 기차를 타고 가야 했는데 내 티켓을 확인해 보니 운행이 중지되었다. 반환 후 다시 예매하라는 안내에 따라 그렇게 했는데 그것도 기차역 도착 후 확인해 보니 운행중지로 바뀌어있었다.


나는 꼭 오늘 내려가야 할 이유가 있다. 모임이 하나 있는데 날짜를 잡을 때 이 날 저 날 안 되는 날짜를 여러 번 이야기했고, 어렵게 피해서 잡은 날이 오늘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내게 안전하게 서울(딸네 집)에서 하루 더 자고 오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지만 중요한 모임이라 일단 가보겠다고 했다. 모임은 이따가 저녁 시간이어서 그때는 이 기상상황이 정리되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예상해서 몇 가지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

KTX마저 운행이 중단되면 나는 다시 딸네 집으로 후퇴한다.

ㅡ천안아산역에 내렸을 때 남편이 못 나오게 되면 나는 천안에 있는 아들네로 가 있는다.

ㅡ내가 온양온천역까지 왔는데 남편이 마중 나오지 못할 경우, 나는 온양 시내에 있는 엄마 댁으로 간다.

기차 편을 다시 검색해 보니 다행히 KTX는 운행되고 있어서 예매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도착시간을 알리고 만약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경우 무리하게 마중 나오지 말라고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일이 그쯤 되면 모임 불참의 변으로 삼아도 될만할 것이다. 또한 그 정도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내게만 문제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문제가 될 터이다.

지금은 KTX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다. 비가 그쳤고 서쪽 하늘이 뿌옇게 밝았다. 이 정도 날씨면 나는 우리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것이고,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단장을 하고 저녁 모임에 참석할 것이다.

용산역에서 주행시간 40분 거리의 천안아산역을 가는데 앞 선 열차와의 거리등 안전 확보 문제로 천천히 운행하느라 45분이 연착되어 한 한 시간 반이나 걸렸지만 무사히 도착했으니 이것도 다행한 일이다.


추기:

모임은 결국 취소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 사정은 전혀 다행하지가 않았다. 마당에 물난리가 나서 물이 빠지고 난 뒤에도 온통 진흙 투성이었다. 비가 잠시 뜸한 틈에 나가서 마당을 물청소하고 배수로를 뚫었다.

들어와서 쉬던 중 남편이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었다. 삽교평야에 살고 있는 남편 친구였는데 삽교천의 범람으로 집이 완전 침수되어 몸만 빠져나왔다고 한다. 정말 큰일을 당하지 않았나. 조금 전만 해도 비 뒷설거지가 어려워서 꽤 고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남편 통화를 듣자 하니 내 거실에 편히 앉아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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