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양선생활

솔라닌 상황

by lemonfresh

저녁을 먹고 나서 부엌 창고에서 감자를 꺼내왔다. 작년에 먹다가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박스 속에서 싹이 길게 자라 있었다. 뒤적뒤적해 보고는 치우는 곳에 놓았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닭장에 가면서 감자 상자를 가져가려고 했다.

"설마 닭 주려는 거 아니죠? "

"닭 줄 건데?"

"어? 솔라닌 때문에 안 될 텐데?"

"괜찮아. 닭은 사람이랑 달라."

"닭은 괜찮다구? 어디 책에 쓰여 있어요?"

나는 글자로 된 지식을 신봉한다. 책에 나와 있다면 믿어도 될 것이다. 지금까지 감자 싹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중학교 때 가정시간에 배운 것으로 '솔라닌'이라는 독소가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과서에 나왔으니 이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닭들은 괜찮다니, 그건 좀 미심쩍다.

"확실한 거죠?"

남편 대답이 얼른 안 나온다.

"그냥 당신 경험상 그렇다고?"

"응."

"저런... 개인의 산발적인 경험은 신뢰할 수 없는데...."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감자 싹에 독소가 있다는 건지 길게 자란 감자 순까지 독소가 있다는 건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어찌 보면 요즘처럼 푸성귀가 귀한 시기에는 닭에게 좋은 먹이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한 발 물러섰다.

"알아서 하세요."

어차피 닭들은 남편 거다. 나는 가져다주는 달걀만 받으면 된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내가 감자 중 몇 개를 순을 따고 깎아서 물에 담가 두었다. 감자의 선별은 중학교 때 배운 지식에 그동안의 삶의 경험을 더해서 기준을 삼았다. 싹이 뾰족하게 자리 잡고 감자가 푸르게 변한 것(아마 이런 게 솔라닌?)은 탈락이고 순이 길게 자라 쭈글쭈글해졌어도 속살이 하얀 것은 합격이다. 처음에는 아기 주먹만 하던 것이 깎고 보면 밤톨만큼 작아졌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리고 솔직히 말하연 전에도 그런 감자를 먹어 본 적이 있다. 개인의 산발적인 경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이의 경험일 때 그렇다는 것이고 나 자신의 경험은 예외다.


더구나 감자를 그냥 다 버릴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한동네 사는 사돈댁(조카딸 시댁)에서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감자를 캐면 또 주실텐데 먼저 주신 것 잘 먹었다고 인사할 말은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래도 끝에 잘 먹었으면 잘 먹었다고 말씀드려도 아주 거짓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 지을 준비를 하면서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거 감자 좀 갈아주세요."

남편은 감자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채었다.

"뭐 하려고?"

"감자전 해드릴게요."

"어? 어떻게 알았어? 아까 티브이에서 감자전 나와서 먹고 싶었는데!"

남편이 믹서를 꺼내서 금방 갈아 주었다. 청양고추도 씨를 털고 송송 썰어 주었다. 나는 그 사이에 상을 먼저 보아놓고 감자전을 부쳤다. 가장자리는 바삭하고 가운데는 찰진 감자전이 되었다. 복분자주를 꺼내 와서 곁들여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티브이를 보았다. 한참 지나도 아무 이상 없었다. 닭들도 잘 있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에 우리는 아마 솔라닌이 있는 부분을 안 먹어서 괜찮은 것 같고, 닭들은 먹었을 텐데 괜찮은가 보다. 정말 '닭들은' 괜찮은 건지, 아니면 닭들도 골라서 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로써 솔라닌 상황은 종료되었다. 다음에 햇감자가 나오면 아무런 걱정 없이 감자를 쓱쓱 깎아서 알맹이는 내가 먹고 껍질은 닭에게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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