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랄 일
내 주변에는 4차원의 입구가 있다. 어떤 물건이 홀연히 사라지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은 결혼반지다. 아들을 출산하러 병원에 갈 때 반지를 빼어 어디다 보관했는데 그대로 없어져 버렸다. 지금 아들이 서른여덟이 되었고 그사이 이사도 두 번이나 해서 어디에 있었다면 나올 법 한데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차원 이동을 한 게 아니라면 어디선가 나와야 할 듯하다.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4차원으로 들어갔나봐요."
4차원으로 건너간 가장 중요하고 아까운 물건으로 치자면 결혼 반지가 그렇지만 아주 괴로운 것은 일상생활에서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당해보면 아주 환장할 노릇이다. 정말로 시간을 되돌려 그 상황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근래에만 해도 손자가 아끼는 도마뱀 피규어를 우리 집에 놓고 가서 내가 가져다준다고 챙긴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이 기억이 안 나서 진땀을 뺀 적도 있다.
나중에 찾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가방이 아니고 다른 가방을 가지고 가느라 거기에 넣었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4차원으로 이동했던 것은 아니고 단순한 나의 단기기억 상실의 문제였다.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소실되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전혀 납득이 안된다. 그동안 4차원의 입구로 들어간 물건은 많았지만 그 출구에서 다시 나온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물건이 다시 나왔다. 그 일은 이러하다.
나는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반지 목걸이 브로우치 등등이다. 하지만 그런 귀금속 아이템들은 값이 꽤 나가서 이쁘다고 매번 살 수는 없다. 그런데 패션 반지나 목걸이라면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푸는데 아주 마땅하다. 가격이 저렴해서 여러 개를 사서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해도 부담이 적으니 말이다. 지난번에도 반지를 두 개 샀다. 하나는 은색이고 하나는 금색이다. 지나치게 번쩍이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해도 액세서리는 너무 진짜 같은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이다. 나는 빛과 광채가 주는 즐거움을 추구할 뿐 가짜를 진짜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은 반지를 두 개 산 것은 로즈골드 팔찌를 할 때는 금색 반지를 끼고 은 팔찌를 할 때는 은색 반지를 끼겠다는 의도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금색 반지를 잃어버렸다. 액세서리를 담아두는 상자를 뒤집어 털었는데도 없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반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비슷하게 착용할 다른 아이템들도 있고 아무리 내놓고 가짜라고 해도 너무 번쩍거려서 전체적인 조화에 맞지 않고 혼자 튀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 반지를 발견했다. 전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말이다. 설이 가까워와서 아들 딸 가족이 집에 왔을 때 어떤 음식을 할까 미리 메뉴를 계획해 놓으려고 티브이 장 아래에서 내 노트 상자를 꺼냈다. 내가 메뉴를 기록하고 레시피를 적어두는 노트가 있는데 그걸 담아두는 상자에 그 반지가 있었다. 내가 그 노트를 꺼낸 것은 작년 설이었고 그 반지는 잘해야 두 달 전에 산 것이다. 원래는 지난 추석과 남편 생일 때도 그 노트를 참고하고 메뉴를 짜고 또 마련할 음식 리스트를 적어 놓았을 것인데 올해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그렇게 정성을 들이지 못하고 대충 고기를 구워 먹고 지나갔다. 내가 그 노트를 꺼내지 않았다는 것은 마지막 적은 기록이 작년 남편 생일인 것으로 증명이 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 반지가 그 노트를 두는 상자에 들어가 있었을까.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반지를 찾은 것은 좋지만 그 반지가 어떻게 거기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 너무 큰 수수께끼였다. 나는 궁금한 것을 또 못 참는 사람이어서 이 스스로 풀어야 할 비밀이 여간 심난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럴 때 쓰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썼다. 어떤 물건을 도저히 찾지 못할 때 '4차원의 세계로 이동했다'라고 치고 찾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방법인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4차원의 세계에서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정말이지 4차원 어쩌고 하는 것은 나 자신도 믿지 않는 스스로에게 하는 농담이었는데 거기서 다시 돌아온 물건이 있다니 이게 참 애매해진다. 잃어버렸을 때 난감한 것 이상으로 혼란스럽다.
다만 내가 생각한 것은 정말 4차원의 출구에서 그 반지가 나왔다면 내 결혼반지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잃어버린 물건들도 그렇다. 지금 당장 다시 가져오고 싶은 것은 내가 어디에 두었다는 손자 손녀의 통장과 아들네 집 이사를 도와주러 갔을 때 내가 받았다는 아들네 집 각 방문의 열쇠이다. 내 집이라면 집안을 다 뒤집어서라도 찾으려고 했겠지만 아들네 집이어서 내 맘대로 뒤질 수도 없고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바라마지 않는 것은 지난번 그 도마뱀 피규어와 같이 어디서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 이래저래 했었다는 기억을 다시 회복하고 4차원 어쩌고는 그냥 맘 달래기 농담으로 남기는 것이다. 아 정말, 이 단기기억 상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추기
아이들의 통장은 아들이 찾았다고 한다.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각 방문의 열쇠는 내가 찾았다. 있을만한 곳에 있었다. 신기하게도 물건을 찾고 보면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런데 그 티타늄 반지는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