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라 쎄느' 사람들

엄마와 딸

by lemonfresh

일요일 오후 미용실을 찾아갔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다. 미용실에 그날 꼭 가려했던 이유는 내일이면 늦기 때문이다. 매주 월, 화는 그 미용실이 쉰다. 나는 주말에 거의 아들네 가족과 함께 지내기 때문에 주말에는 개인적인 시간이 없다. 그래서 월요일이 내게 한가한 날인데 내가 미용실을 찾아갔다가 허탕을 친적이 두어 번 있었다.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할 것을 무심코 또 갔다가 또 헛걸음하고 말았었다. 그 후로는 허탕은 치지 않았지만 그 미용실의 월화 휴무가 아쉬운 적이 많다.


일요일 낮에 아들이 와서 아이들을 데려간 후 한가한 시간에 펌을 해야겠다고 맘먹고 차를 타고 나갔다. 그런데 미용실에 올라가 보니 휴대폰이 없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결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휴대폰 케이스에 카드를 꽂아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미용실에 손님도 너무 많아서도 그렇다. 기다리자면 자칫 해가 지겠다. 그런데 결국은 휴대폰을 찾아 가지고 다시 펌을 하러 갔다. 그 사이에 손님이 많이 빠져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거울 앞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그 미용실 원장은 오십 대의 여성이다. 손이 빠르고 일을 쉽게 한다. 일을 도와주는 직원이 있기는 한데 디자이너는 그 하나다. 가위를 드는 사람이 혼자고 펌을 하는 것도 혼자라는 말이다. 직원들은 샴푸를 하거나 바닥을 청소하거나 펌을 할 때 롯드를 건네주거나 한다. 이것은 꼭 미용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그이들도 그냥 와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미용일을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삼 년 전부터 가위를 드는 디자이너가 한명 더 생겼다. 앳된 얼굴의 순둥한 아가씨인데 처음에 이년 정도는 여느 직원들과 같이 샴푸와 청소 등을 했었고 경력이 쌓인 뒤에는 원장님과 같이 커트도 하고 펌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손님용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원장님의 눈치를 보거나 하지는 않았다. 원장님이 묻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 주식 사는 거야?"했고 그 아가씨는 간단하게 "응."하고 대답했다. 그 아가씨는 원장님의 딸이었다. 어느 날은 그 아가씨가 안 보이기에 물으니 차를 고치러 갔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따님은 참 좋겠네요. 엄마한테 일 배우니 걱정할 것도 없고."


오래전에 내가 신정호에 산책 갔을 때 그 가족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아가씨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다. 그 딸내미는 외동이어서 온 가족이래야 단 세 명이었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곱게 자란 딸이었다. 나중에 원장님에게 들어보니 미용을 배우는 학교로 진학을 했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권한 사람이 당연히 엄마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아빠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고 했다.


그 선택이 잘한 일이라는 것은 코로나 시기에 증명되었다. 그 딸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코로나가 확산되어 학교가 문을 닫고 원격강의로 전환이 되었고 2년 과정의 학업이 코로나 시기에 매몰되게 되었다. 실습 위주의 공부를 해야 할 과정의 특성상 다른 학생들에게는 매우 난감한 문제였는데 그 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과정을 마치고 나서 일을 하면서 실무를 배울 곳을 구하는 것도 문제였는데 그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내가 듣기로 미용업계에도 일을 배우는 동안 당하는 서러움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는데 그 아가씨는 걱정 없이 일을 배울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한 5년을 엄마 미용실에서 인턴 기간을 보내면서 차석 디자이너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그 미용실에 가면 언제나 볼 수 있는 고정멤버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 보니 그 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원장에게 물어보았다.

"오늘은 따님이 안 보이네요. 어디 갔어요?"

"나갔어요."

"엥? 나가다니 무슨 말이에요?"

"다른 샵에 취업했어요."

그런 거였나? 나는 당연히 엄마의 미용실을 물려받는 건 줄 알았었다.

"그래요? 왜요?"

"제가 알아보고 나간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제는 제힘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저는 걔를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덧 제힘으로 살 나이도 되었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잘해요. 어느 날 보니 잘하더라고요."

이제 딸이 스물여섯이 되었고 혼자 일할 능력도 되고 해서 다른 샵에 취업하는 것을 찬성해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걱정되지는 않는지 물으니 걱정은 되지만 딸이 독립했다는 사실이 너무 좋고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처음에 일 배울 때 어렵다는 것 아니었어요?"

"아뇨. 걔가 취업한 샵이 디자이너들만 있는 샵이라 누구 지시받을 것 없이 각자 자기 손님만 받으면 되어서 걱정 없어요. 어려울 수 있는 과정은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 다 해서 내보냈잖아요"

디자이너들끼리는 나이나 경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혼나거나 서러움을 받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연합 샵인데 그래도 건물 사용료 등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 있으니 수입을 오너와 나누는 형태라고 했다. 예약은 주로 온라인으로 받는데 본인 매출의 51%를 디자이너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샵의 오너에게 돌아가는데 그렇게만 해도 수입이 꽤 된다고 했다.

"보니까 돈 잘 벌더라고요."


전에도 경우는 다르지만 엄마가 자식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쟤 일 잘 해요. 돈 잘 벌잖아요." 그때는 엄마가 도배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아들을 가르쳐서 같은 일을 한 경우였다. 그 이도 아들이 독립을 해서 독자적으로 일을 하는데 가끔 형편이 될 때는 엄마의 일을 도우러 온다고 했었다. 그 엄마들이 자녀를 보는 시각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그런데 그 딸의 행방을 궁금히 여기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내가 펌을 말고 기다리는 동안 다른 손님이 머리를 하면서 그 원장님과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딸내미는 일하기가 어떻대요? 좋대요?"

"좋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런가 봐요. 처음에는 울면서 다녔어요."

내가 듣기로는 디자이너들끼리 일하는 곳이라 울 일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예약이 거의 차는데 그게 무섭대요. 아침에 나갈 때 걱정하고 나가고 했어요."

예약이 안 차서 걱정이 아니라 예약이 다 차는 게 두려울 수가 있구나. 어떤 일을 온전히 혼자서 해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진다는 게 그런 부담이겠구나. 그런 것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기간은 길지 않았고 본인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자 자연히 해결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고민은 어느 직업에서나 느끼는 것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이 결국 그런 것이 아닌가.


*엄마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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