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의 삑 삑 삑

by lemonfresh

지난해 먼저 살던 아파트에서의 일이다. 날마다 새벽 다섯 시쯤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인데 대개 중장비가 후진할 때 내는 경고음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삑 삑 삑 하면서 잠깐 울리다가 후진을 멈추고 앞으로 빠져나가면 들리지 않는다.


그때 내가 잠을 깨는 시간이 새벽 다섯 시였다. 휴대폰으로 EBS 라디오 자동 시작 설정을 해두었는데 그 시간이 다섯 시였다. 그 시간이 되면 애국가가 나오고 바로 프로그램이 나온다. 내가 십오 분 정도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밖에서 삑 삑 삑 소리가 난다. 그러면 나는 안심을 한다. '저 사람이 오늘도 일 하러 잘 나갔구나.' 참 일정하고 꾸준한 사람이다.


도대체 이런 신새벽에 나가는 중장비가 무엇일까? 내가 아는 저 소리는 포크레인 후진 때 들었던 소리인데 아직 밝지도 않은 새벽에 나갈 일이 무엇일까? 어느 날 내가 한번 봐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딱히 급할 것도 없는 일이어서 한 달 두 달 그냥 지났다. 그리고는 어느 날 마침 소리가 날 때 내가 일어나 있어서 놓치지 않으려고 얼른 창가로 갔다. 내려다보니 하얀 탑차가 아침마다 내가 들었던 그 삑 삑 삑 소리를 냈다. 나는 막연히 포크레인 아니면 레미콘 차량일 줄 알았는데 탑차였다. 그러고 보니 그 시간이 이해가 되었다. 남들이 잘 때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 꾸준하고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들, 그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할 것이다. 내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이유도 아들이 아침 일찍 출근길에 오르기 때문에 아침 먹는 것을 보고 배웅을 해 주려는 것이다.


여기로 이사 와서는 시간이 좀 여유로워졌다. KTX 역이 바로 앞이라 아들의 서울 출퇴근이 한결 용이 해졌기 때문이다. 이사 온 지 오 개월 남짓인데 그동안 잊고 있던 새벽 다섯 시의 소리가 생각이 났다. 여기서는 움직이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 거리를 볼 수 있는데 아무리 이른 시간이어도 지나는 차들이 있다. 그리고 빠른 기차가 지나는 소리가 먼 곳에서 나는 천둥같이 구르릉 구르릉 들리고 1호선 전철이 지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새벽에는 커다란 집게 괴물이 온다. 몸통은 포크레인 같이 생겼는데 기다란 외팔 끝에 꽃잎처럼 펼쳐지는 큰 집게가 달려있다. 쓰레기 분리 수거장에 와서 쓰레기를 집어서 같이 온 트럭에 싣는다. 그 집게 괴물이 왔다 가면 아파트 안이 훨씬 깔끔해진다. 집게 괴물은 그 삑 삑 삑 차보다는 좀 늦게 활동한다. 조금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창밖의 거대한 집게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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