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라 쎄느' 사람들 2

원장의 이야기

by lemonfresh

내가 어떤 직업의 사람을 만날 때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그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 지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는 방편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큰 고민 없이 그냥 미용학원에 등록을 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친한 친구들 서너 명도 따라서 같이 등록을 하여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고. 그중 미용업계를 떠난 친구도 있기는 하지만 친구들이 아직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단다. 젊은 때여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미용을 배우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들이 정리되었다고.

내가 그 아파트 단지의 미용실을 다니기는 했었지만 처음에는 다른 미용실에 다녔었다. 그저 1층에 있어서 찾아지기 쉬운 미용실에 간 거였다. 그때는 내가 다니던 미용실 말고 다른 미용실이 그 상가에 또 있는 줄도 물랐다. 그 뒤에 '라 쎄느'에 다니게 된 것은 내가 다니던 미용실이 나가고 나서 대안을 찾다 보니 2층 코너에 미용실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먼저 다니던 미용실은 서울 유명한 샵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프라이드가 센 여자 원장이었다. 프라이드는 가격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이는 시골 임대 아파트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런 고급 비용을 책정할 수 없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라 쎄느'는 그런 자랑과 설득이 없었다. 미용실서 하는 것은 크게 보아 펌, 커트, 염색이다. 주인 여자가 뭐 할 건지 묻고 손님이 대답하면 원하는 대로 해주고 해당하는 비용을 내면 된다. 그런데 그 비용이 그 아파트 사람들도 이의 없이 낼 정도다. 나는 처음에 펌 비용 낼 때 물어보았었고 그 뒤로는 묻지 않고 카드만 건네는데 최근의 비용을 카드 알림 문자로 확인해 보니 5만 원이 찍혀있었다. 거의 십 년을 다니다 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에 머리를 하고 나서 '그만큼만 받는다고?' 했던 생각이 난다. 그러니 미용실 라 쎄느의 가장 큰 경쟁력은 서비스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라 쎄느를 찾아가는 이유는 비용만이 아니다. 내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긴 말 필요 없고, 어렵지 않게 술술 해 주고, 사람이 좀 쿨한 편이다. '라 쎄느'라는 미용실 이름이 이국적인 것도 매력이다.

지금 라 쎄느는 아파트 상가의 2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처음엔 그 자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상가 안 쪽 한켠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분양을 하기 전 임대 아파트 시절에 인근의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들이 숙소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 삼 년간 아주 좋은 시절이 있었다. 이후 임대가 분양으로 전환되면서 세대가 빠지기 시작했는데 분양받아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몇 년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처음엔 1년이면 되겠지 했는데 그다음 해가 되어도 입주가 많지 않아서 일 년 일 년 기다리다 보니 다시 회복하기까지 오 년이 걸리더라고요."

그때 상가가 다들 망해 나갔다고 한다. 나중까지 버틴 사람 거의 없었고 그이도 남으려고 처음부터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년이면 되겠지 되겠지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그때 다들 나가는 바람에 제가 자리를 싸게 사기는 했죠. 그 이후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차차 회복세로 돌아섰고 근래 한 오 년은 잘 되고 있어요."

내가 '그래도 그때 버티기를 잘하신 거네.'하고 거들었는데 그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자리 가서 했어도 잘했을 텐데?"

자기는 어디서든 열심히 했을 거고 그때 버린 오 년이 아깝다고 했다.

그 아파트에만 해도 라 쎄느 말고 다른 미용실이 또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상가에만 미용실이 네 개라고 했다.

"두 개가 아니고 네 개예요?"

"그렇다니까요."

그래도 다들 먹고 산다고. 자기는 어디서든 잘했을 거라고 말하는 여자가 대단해 보였다. 나는 평생을 교원으로서 안정된 수입으로 살았지만 그 안정이라는 것은 개인이 노력을 더하고 덜하고는 상관없는 일정함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지만 그이처럼 인생을 스스로 꾸려 본 사람들은 나같이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과는 다른 경지가 있다. 나는 저런 이들의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존경한다. 아마 나는 앞으로 그이가 미용실을 옮겨가지 않는 한, 아니면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않는 한 평생 '라 쎄느'를 다닐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추기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은 왜 휴일을 이틀로 늘렸는지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고 대개의 미용실이 격주로 어느 요일을 휴일로 했었다. 그 얼마 두 부터는 매주 휴업하는 미용실들이 생겨나 매주 어느 요일에 쉬는 형태로 운영하다가 코로나 시기부터는 라세느의 휴일이 한 주에 이틀씩 운영되었다. 다른 미용실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당연히 코로나 시기에 이틀씩 쉬게 된 것이 그리 굳어졌거니 생걱했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보조자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전에는 직원들 휴무일에 다른 사람을 구해 썼는데 어느 시기 부터 주 이틀정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원장 자신도 쉬어보니 체력이나 생활이나 여유시간을 가지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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