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시장 구경 나갔다가 작은 화분을 하나 샀다. ‘파리지옥’이라는 풀이다. 손자 호수가 식물 동물에 관심이 많기에 주말에 놀러 오면 보여주려는 것이다. 평소에는 잎을 벌리고 있다가 벌레가 들어오면 손깍지를 끼는 것처럼 잎을 닫아 가둔다. 벌레가 죽으면 천천히 소화를 시키는가 보다.
파리지윽, 네이버 이미지
남편이 집안에 들어온 파리를 잡는다고 했다. 작년에 썼던 파리채가 필요한데 안 보인다. 며칠 뒤에 내가 찾았다.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한 곳에 있었다. 그런데 왜 며칠이나 걸렸을까? 이것저것 쌓인 게 복잡해서 찾기 귀찮아서 그랬다. 파리채를 남편에게 주었더니 반색을 했다.
“어? 찾았네? 어디에 있었어?”
“냉장고 옆 이것저것 쌓아 놓은 박스에요.”
“그럴 것 같더라.”
“그래요? 그런데 왜 못 찾았어요?”
“복잡해서...”
다 들추어보기 싫어서 그랬단다.
그렇지 않아도 파리 들어온 게 있어서 성가셨는데 전용 도구가 있으니 잡기 쉬워졌다. 잡은 파리는 파리지옥 잎 위에 놓아주었다. 파리를 잡을 동기가 생기니 적극성이 올라갔다.
“아, 저 파리 잡아야겠다.”
“왜요? 파리지옥 봉양하려고?”
전에는 집안에 들어온 파리가 적당히 도망 다니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앉았다 하면 죽게 되었다. 남편이 파리지옥 잎 위에 파리를 놓아주면서 말했다.
“내가 파리 염라대왕이 되었네.”
저런... 파리지옥 먹이자고 파리 염라대왕을 자처하다니, 파리에게 너무 불공평하다. 그러나 파리지옥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파리에게 관대하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집에는 파리 염라대왕이 있다는 것을 동네 파리들이 알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