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이 속담의 전제 조건은 까마귀가 배를 떨어 뜨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집 뜰에 보리수나무가 있다. 얼마나 많이 열렸는지 다 먹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잘 먹지 않는 이유도 있다. 앵두는 먹을 만 한데 보리수는 약간 떫은 맛이 난다. 그래서 우리 집 보리수는 관상용이다. 손주들이 오면 놀이용 또는 식용이 되기도 한다. (사실은 앵두도 거의 그렇다.)
오늘 아침에 남편이 거실에서 나를 불렀다.
"빨리 와봐. 바깥에 까마귀 왔어!"
"어디 어디!"
"저기 보리수나무에."
까마귀가 푸드덕 날면서 보리수 가지에 앉으려 하고 있었다. 참새를 보다가 까마귀를 보니 생각보다 컸다. 그런데 보리수 가지는 흥청하게 늘어진 것이 까마귀 무게를 지탱할 만큼 힘이 실리지 않았다. 이미 주렁주렁 달린 자기 열매의 무게도 감당을 못하고 아래로 척 늘어진 터가 아닌가. 그리고 보리수 열매는 꼭지자루에 매달려서 나뭇잎 아래로 숨어있어서 가지 위에서는 따기가 쉽지 않다. 몸이 가벼운 뱁새나 참새 라면 아래 가지에 앉아 위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겠지만 몸이 큰 까마귀로서는 날아 앉으려면 흥청흥청 늘어지는 가지가 곤란했을 것이다. 몇 번 시도를 하더니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날아가 버렸다. 어쩌면 평소 식성으로 보아 별 매력이 없는 먹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번 좀 나가볼까요?"
"뭐하러?"
"보리수 떨어졌는지 좀 보게요. '까마귀 날자 보리수 떨어진다.'는 말 못들어봤어요?"
실없는 농담에 남편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분명히 보리수가 떨어지긴 했을 것이다. 열매가 익을 대로 익어서 살짝만 건드려도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까마귀가 옛 속담을 핑계로 결백을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보리수 열매를 따먹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한 것을 우리가 직접 보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보리수나무가 꽤 똑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매를 자루에 달아서 잎새 아래로 늘어뜨리는 것에 그런 전략이 숨어 있는지는 몰랐었다. 까마귀가 보리수 따 먹기에 실패하고 그냥 가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다. 손을 쓸 줄 아는 인간에게는 이게 오히려 따기가 쉽다. 한 손으로 가지를 들추고 조르륵 늘어진 열매를 한꺼번에 따면 되기 때문이다. 앵두는 가지에 직접 붙어있어서 일일이 떼어내듯 해야 하는데 보리수는 한 손에도 대여섯 개씩 딸 수가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게 꼭 보리수가 손해나는 일은 또 아니다. 어차피 스스로는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이 열매를 누군가에게 먹혀서 장소를 이동하여 번식하는 것은 그들이 고래로 써왔던 생존전략이 아닌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자연이 스스로를 운영하는 방법은 참 오묘하고 복잡하다. 그러니 자연(自然 스스로 자, 그러할 연)이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오늘 자연 공부 잘 했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자연'이 아닌 '과학'을 배우지만 과학이라는 딱딱한 이름에는 담기지 않는 정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