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Jul 29. 2021
이삼일 전 아침이었다. 남편이 마당에 나갔다 오더니 말했다.
“바람이 제법 시원하네. 갈바람 난 것 같아.”
“그래요?”
“응. 산들바람이 불어.”
우리는 아직 그럴 때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런가 하며 반신반의 했다.
지난 휴일에는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났을 때 남편이 거실로 나가면서 말했다.
“해가 많이 누웠네. 햇빛이 벌써 여기까지 들어왔어.”
해가 하늘 높이 지날 때에는 빛이 창턱에서 얼마 들어오지 않는데 지나는 길이 비스듬해지면 거실 바닥 깊숙이 해가 들어온다. 하지 때 해가 가장 높이 지나고 나면 여름이 진행되는 동안 해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초복 중복이 이미 지났고 가을의 문턱인 입추가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출근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집에서 나선다. 나는 이때가 가장 좋다. 학교에 갈 때는 몸과 마음을 최상으로 다듬고 나오기 때문이다. 간혹 무슨 일로 출근이 기쁘지 않을 때라도 나는 출근길을 사랑한다. 차를 타고 지나며 보는 풍경은 늘 아름답다. 벚나무 가로수 아래에는 일찍 떨어진 누렁 잎들이 간간이 있다. 그 아래에는 심어주지도 키워주지도 않은 강아지풀들이 한껏 자라났다. 하얗게 빛나는 햇살 아래서 차가 지날 때마다 이삭들이 살랑인다. 땡볕에 지쳤는지 녹색이 약간 퇴색되었고 이삭의 솜털 사이사이로 밝은 햇살이 비추인다.
학교 건물 앞 화단 가에는 고무통에 심긴 벼들이 짙은 녹색으로 무성히 자랐다. 머지않아 이삭이 팰 것이다. 방학 전에는 아이들이 점심때마다 몰려들었었다. 벼 자라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물에서 헤엄치던 올챙이를 보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올챙이들이 잘 있는가, 어쩌면 이미 개구리가 되어서 통 밖으로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에는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벌써 포도를 팔고 있었다. 포도는 내게 여름방학의 과일이다. 복숭아도 그렇다. 그리고 지금이 여름방학이다. 햇사과도 있었다. 그러나 복숭아는 먼저 산 것이 아직 남았고 포도와 사과는 아직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서 나는 커다란 수박을 하나 골랐다. 수박이 주는 시원함과 달콤함을 여름내 실컷 즐길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산들바람이 한 번 불었다고 해서 가을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름은 아직 건재할뿐더러 아직 피크를 남겨두고 있다. 뜨겁고 습한 낮의 열기와 해가 져도 식지 않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우리를 지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밤새 더위에 뒤척이던 끝에 새벽이 오면 꿈결인 듯 산들바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면 그때는 우리 모두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포도밭에 한 번 가봐야겠다. 지난해에는 제 때에 가지 못해서 과수원의 포도를 사지 못했다. 길가 쪽에 세워놓은 가판대에 사람이 없고 텅 비어있었다. 이미 수확 시기가 지났던 것이다. 그래도 마트에 가면 어떤 포도든 있을 것이나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어서 굳이 사러 가지 않았다. 올해는 본격적인 포도 철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수박을 먹을 만큼 먹은 뒤에 포도를 사러 가봐야겠다. 나는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뜨거운 여름이 주는 선물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