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같이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현관을 나섰다. 햇빛이 마당에 온통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볕이 따갑기는 했으나 팔에 닿는 공기의 느낌이 습하지 않았다.
마당 한쪽에는 상사화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각각 다른 시기에 피어나 만나지 못해 서로 그리워한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상사화가 필 때면 찬바람이 난다. 우리 집은 위치가 높고 기온은 상대적으로 낮아 봄꽃은 늦게 피고 가을꽃은 일찍 핀다. 내려오다 보니 꽈리도 한두 개 빨갛게 익었고 얼마 전부터는 고추도 빨갛게 익기 시작했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는 갱티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늘을 배경으로 올라가서 산을 배경으로 내려간다.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가득히 피어올랐다. 오늘 아침에는 앞에 가는 차도 뒤따라오는 차도 없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 고개를 올라가서는 천천히 내려간다. 팔월의 녹음이 한눈에 펼쳐진다. 먼 산 위에는 아파트가 한가로이 솟아있다. 막상 다가가 보면 길에 자동차가 씽씽 지나고 가로수들은 땡볕에 지쳤으며 손바닥만 한 흙이라도 있는 곳이면 잡초가 무성히 자라났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세상은 평화롭고 고요하기만 하다.
나는 팔월의 여름이 좋다.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것을보면 까닭 없이 마음이 설렌다,학교 운동장이나 길가 가로수, 신정호 산책로에는 찬란한 햇빛이 쏟아진다. 볕은 어느 때보다 뜨거우나 습기는 차차 걷힐 것이고 지나갈 것 같지 않은 여름날도 어느 사이 스사로 잦아들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그렇다.
사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나는 날마다 그 사람 같지만 몇 달 전에 찍은 사진만 보아도 새로운 생각이 든다. 아침에 출근을 하기 전에 마당에서 셀카를 몇 장 찍었다. 나의 웹 계정에 담아 놓는다. 지난 사진들을 뒤적여보면 검은 머리 때의 사진도 있다. 물론 물들인 것이기는 해도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 얼마나 젊었던가. 그리고 셀카를 찍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가장 좋은 모습만 담아서 내 인생이 스스로 만족스러웠다는 것과 인생 어느 때이고 내가 공들여 살았다는 증거로 삼으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누군들 열심히 살지 않았겠는가. 제 할 일을 다하고 떨어지는 벚나무 낙엽도, 꽃을 피우려고 여름내 준비한 상사화도, 이제 붉기 시작하는 꽈리도, 고추도, 올챙이로 물속에 살다가 자라서 밖으로 나온 개구리도, 오랜 유충 생활 끝에 드디어 허물을 벗은 매미도, 모두들 자기 삶에 진심이지 않았겠나.
나도 인생 어느 때고 그렇게 살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여름에도 앞으로 다가올 가을에도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모든 시간에도 나는 그렇게 공들여 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