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Jul 20. 2021
나는 갑자기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심지가 굳어 쉬이 흔들리지 않고, 투박해 보여도 존재감이 있는, 늘 푸른 나무처럼 변함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상냥한, 부드러운, 친절한, 친근한, 재미있는, 지혜로운, 얌전한, 이러한 것들이 그동안 내가 나에게 스스로 부과한 과제들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부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몇 가지 오류도 있다. 어색한, 눈치 없는, 특이한, 엉뚱한, 소극적인 등인데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불쑥 발현되는 나의 부적응 패턴들이다.
나는 나의 좋은 면만을 남기고 부적응 행동들은 소거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어차피 그것들도 '나'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기만 하던데 왜 나는 아직도 그런 행동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언행이 적절하고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사람이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겁지 않으면서 무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니, 무슨 말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 그런 생각이 갑자기 어디서 왔을까? 사실 갑자기 온 것은 아니다. 마음속에 있었던 생각이다. 그래도 의식 표면에 떠오른 계기는 있다. 다름 아닌 은반지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우연히 본 은반지가 맘에 들어서 샀다. 가격은 이만 몇천 원이다. 은 가격이 금보다 낮은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 가격으로 '진짜' 은을 살 수 있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반지 사이즈를 잘못 골랐다. 너무 작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샀다. 이번에는 사만 몇천 원이다. 그런데 받고 보니 상당히 굵직한 반지가 왔다. 처음에 산 것은 얇상해서 마음에 들었는데 새로 온 것을 받아보고 실망을 했다. 1.5돈이라고 해서 가지고 있던 같은 돈수 금반지 정도로 생각을 하고 샀는데 실제로 받은 반지는 훨씬 굵었다. 은이 금보다 가벼워서 같은 무게라면 은이 더 부피가 크다는 것을 몰랐다. 더구나 쌍가락지로 하려고 두개를 샀는데 손가락에 끼어보니 한복을 입을 때나 어울릴 비주얼이어서 그 중 한 개만 끼기로 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 보니 먼저 샀던 얇은 반지보다 좋은 점이 있었다. 끼고 뺄 때 행여 찌그러질까 조심하지 않아도 되고, 존재감도 확실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기분은 전에도 느낀 적이 있다. 두꺼운 나무로 된 커다란 책상, 어머님이 쓰시던 딴딴한 무쇠솥, 산에 갈 때 신던 투박한 등산화, 결혼할 때 엄마가 사주셨던 스테인리스 식기 등이 그렇다. 모두 오랜 시간 변함 없는 물건들이었다. 세련되지 않았고 지금은 자주 사용되지 않지만 그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 * *
차를 고치러 써비스센터에 다녀왔다. 차는 나이가 열 살이 된 에쿠우스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묵직하고 여러모로 내가 의지하는 것이다. 원래 내 차는 날씬한 진주색 SM5였는데 교장발령이 나면서부터 남편 차를 내가 타게 되었다. 처음 이 차를 탔을 때의 느낌은 익숙하게 훈련된 말을 타다가 서툴고 덩치 큰 코끼리를 탄 것 같았다. 옆 자리에 탈 때는 몰랐는데 막상 내가 운전을 하려니 동작이 굼뜨고 움직이는데 넓은 반경이 필요했다. 장기판에서도 '상'이 꼭 이렇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차의 이름 '에쿠우스'는 라틴어로 '말'을 뜻한다는 것이다.
처음의 그 난감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이라는 이름을 가진 코끼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한번 힘을 내면 변덕스럽지 않고 믿을 만했다. 언덕길을 올라도 숨차 하지 않고 속도 건 방향이건 냉난방이건 음향이건 무엇이든 수이 조절이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소나기 퍼붓는 언덕길을 지날 때에도, 눈이 쌓인 아침 길을 가야할 때에도, 바람 불고 낙엽 지는 늦은 저녁에도 자신 있게 길을 나서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누구보다 나와 가까이 있었고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기다려주었다. 이만큼의 절대적인 호응과 신뢰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도, 심지어 남편에게도 바라지 못할 만큼이 아닌가.
그런데 요즘 들어 이 믿음직한 나의 코끼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지난번에는 엔진체크 싸인이 떴고 오늘은 공기압이 부족하다 떴는데 점검결과 단순한 펑크가 아니고 뭐라나 하는 부품이 고장 났다고 한다. 그 이상은 벌써 세 번째 나타나는 것이다. 네 바퀴가 돌아가며 이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에는 엔진도 새로 갈았다. 큰 홍수가 났을 때 내가 물길을 헤치고 무리하게 집으로 돌아오던 과정에서 엔진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산사태에 쓸려내려온 뾰족한 돌에 엔진오일 통이 찍힌 것을 내가 그대로 타고 간신히 집으로 왔다. 남편이 보고 기름이 샌 것 같다고 했으나 우리는 그냥 연료통이 찍힌 줄만 알았다. 다음 날 서비스 센터를 찾아갔더니 이 상태로 타고 나왔느냐며 깜짝 놀라 했다. 엔진오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고, 이미 엔진 자체에도 이상이 생겼을 것이므로 손을 보던가 교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엔진을 청소해서 다시 쓸 것인지 새 엔진을 달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을 때 나는 거금을 아까워하지 않고 새 엔진을 달아달라고 했던 것이다. 차를 보는 사람들은 차령에 비추어 새 엔진을 다는 것을 추천하지 않았지만 나는 굳이 새 엔진을 달기로 했다. 그 차를 타고 다닐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마음도 있었고, 나의 코끼리에게 헌 심장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이를 몇 년 뒤로 되돌려서 나의 코끼리가 다시 젊어지는 마법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심장만으로 모든 건강을 보장할 수 없듯이 차도 엔진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가 보다. 여기저기서 이상이 나타나고 있고 그때마다 솔찮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더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부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바퀴의 그 해당 부품을 갈아야 하는데 벌써 몇 달째 부품이 공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비스 센터의 말로는 현대차가 부품 공급이 잘 안 되는 적은 없었는데 근래 들어서 그런 문제가 생기고 있다면서 일단 할 수 있는 조치를 하고 나중에 부품이 들어오면 연락을 해 주겠다고 했다. 어쩌면 기나긴 코로나의 여파가 부품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 것인가 나름의 분석을 해 보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차를 손 보고 집으로 오면서 앞으로 이차를 언제까지 탈 지 생각해 보았다. 일단은 삼 년 뒤 퇴직할 때 까지는 탈 것이고, 그 후에도 안전에 문제만 안 된다면 최대한 탈 생각이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내 전용차는 없을 것이다. 둘 다 퇴직을 한 후에는 차를 한 대만 운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은 손을 한 번 쳐다보았다. 넉넉한 은반지가 있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끼어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그래도 그게 그거다. 생각에는 깊이가 있고 말에는 무게가 있는, 쉬이 흔들리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내가 변함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심지뿐 아니라 신체적 변화도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앞으로 다가올 마이너스 변화를 미리 거부하는 것인지 한 번 곰곰이 생각을 해 봐야겠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딱히 어떻게 할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