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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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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an 19. 2021

속았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옛날 유머,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가 탕 안에 들어가며 '어이 시원하다.'고 했다. 아들이 그 말을 듣고 탕 안에 들어갔다가 뜨거워서 깜짝 놀랐다.

나는 오늘 엄마한테 속았다.
퇴근을 해서 엄마한테 잠깐 들렀다. 바지를 고쳐 입으려고 수선집을 가려는데 엄마가 아는 데가 있다고 알려준다고 하셨다. 차 탈 필요 없고 걸어가면 된다고 하셔서 바로 옆 어디인 줄 알고 따라나섰는데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더니  찻길까지 건너시는 게 아닌가.
"엄마, 아직이여? 가깝다매."
"다 왔어. 요~기여."
내 기준으로 보면 차 탈 거리인데 팔십 대 엄마한테는 '요기'라고 하신다. 이래서 엄마들이 가깝다, 다 왔다 하는 말을 덜컥 믿으면 안 되는 거였다.

*        *        *

가보니 어릴 적 살던 집 부근이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골목 아주머니들과 예전처럼 지내시니 한동네로 생각하시는 마음도 있고, 어머니가 걸어서 성당에 가시는 길의 반쯤 되니 가깝다고 하실 만도 했다. 오히려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차부터 타고 보는 내가 너무 편의주의에 젖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요새 다리 안 아퍼?"
"보나가 갖다 준 약 먹은 뒤로 괜찮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셋째 딸이 갖다 드린 약이라면 아픈 무릎 따위는 금방이라도 좋아질 것이다.

"이제 겨울도 다 갔다."
소한 대한이 다 지났으니 이제 겨울이 갔노라 하신다. 그러고 보니 해가 많이 길어졌다. 건물들 뒤 어디쯤에 해가 있는지 아직 연한 햇빛이 공중에 걸려있었다. 어릴 적 이 골목을 뛰어다니던 나는 환갑을 맞았고 육 남매를 기르던 젊었던 어머니는 팔순을 넘기셨다. 그렇게 어머니와 둘이 이야기를 하면서 걸은 적이 언제였던가. 배가 나오고 무릎이 구부정해진 어머니는 걸음이 느렸다. 나도 어머니의 걸음에 맞추어 저녁 어스름 속을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갈 때는 멀은 줄 알았더니 돌아오는 길은 짧기만 했다.

#소소한_일상
#생각_한_컷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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